눈앞에 핀 꽃들이 다 붉다 해서/ 무장일홍자(無將一紅字)
다 같은 꽃이라곤 말하지 말게/ 범칭안전화(泛稱眼前花)
암술 수술 꽃마다 다 다르거니/ 화수유다소(花鬚有多少)
그 차이를 좀 자세히 살펴보시게/ 세심일간과(細心一看過)
*원제: 위인부영화(爲人賦嶺花): 어떤 사람을 위해 고갯마루 꽃을 노래하다.
과거 동양인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은 다분히 망원경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산맥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지만, 산맥 속의 산, 산속의 숲, 숲속의 나무, 나무 밑의 마타리꽃과 뻐꾹나리, 그 부근에 살고 있는 무당벌레와 땅강아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자연 전체의 거대한 윤곽은 누구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 살고 있는 개별적 사물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세밀한 관찰은 아무래도 부족했다는 뜻이다. 옛날 우리나라 시문들에 강은 매우 자주 등장해도 강물 속에 살고 있는 꺽지와 빠가사리, 각시붕어와 미꾸라지, 쏘가리와 모래무지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것도 바로 여기에 그 연유가 있다.
예컨대 나무. 나무들은 모두 나무이기 때문에 나무로서의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나무이기 때문에 각각 다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보편성과 동질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그 특수성과 차별성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했다. 따라서 나무를 보면 나무인 줄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선후기의 학자 박제가(朴齊家)가 지은 위의 한시는 동양인들의 이와 같은 자연관에 대해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눈앞에 있는 꽃들이 모두 붉다 해서 꽃들은 죄다 그게 그거라는 식으로 뭉뚱그려 말하지 말라는 거다. 왜 그러냐고? 자세히 살펴보면 암술과 수술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암술과 수술은 개별적인 꽃들이 지닌 차별성의 대표로 구사된 시어. 그러니 어찌 암술과 수술만 다르겠는가? 그 크기와 색깔, 꽃잎의 수와 꽃잎의 모양이 제각각 천차만별이다.
겨자씨 속 수미산! 우주는 크지만 그 우주의 진실은 작은 것 속에서도 살아있다. 때문에 작은 것에다 현미경을 들이대고 우주의 참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산길을 가다가 여치를 만났으면 여치라고 불러주고, 풀무치를 만났으면 풀무치라고 불러주어야지, 일괄 곤충이라 부르지 말라. 끝순이를 만났으면 '끝순아' 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고, 돌쇠를 만났으면 '돌쇠야' 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지, '사람아' 하고 부르면 어느 누가 대답을 하겠는가. (시조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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