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의료기관 '1인 1개소 법'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최재갑 교수(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29일 국내 의료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소위 '1인 1개소 법'이라고 일컫는 의료법 제33조 제8항이 합헌 판정을 받은 것. 즉,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 라는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사법부 최고기관에서 확인했다.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1인 1개소 법' 자체가 생소하고, 더군다나 이 법이 왜 헌재 판결을 받아야 할만큼 중요한 이슈가 되었는지 잘 모를 것으로 생각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 법 조항이 의료기관의 지나친 영리추구를 방지해서 의료 공공성 및 의료윤리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여겼기 때문에 지난 4년 동안 대한치과의사협회를 비롯한 모든 의료인 단체가 합헌 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1인 1개소 법'의 탄생 배경에는 한 사람의 의료인이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운영함으로써 발생한 지나친 영리추구와 그로 인한 비윤리적 문제들이 있었다. 헌재도 합헌 판결의 이유로 "의료인 1인이 주도적인 지위에서 여러 개의 의료기관을 지배·관리하는 형태의 중복운영은 의료행위에 외부적인 요인을 개입하게 하고 의료기관의 운영주체와 실제 의료행위를 하는 의료인을 분리시켜 다른 의료인을 종속케 하는 등 지나친 영리추구로 나아갈 우려가 크다"며 1인 1개소법의 입법 취지와 타당성을 설명했다.

'1인 1개소 법'은 새로운 법이 아니고, 이전에 있었던 규정인 '의료인은 하나의 의료기관만 개설할 수 있다'는 조항을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도록 한다'로 개정해서 그 의미를 보다 명확히 표현했고, 여기에 덧붙여서 '의료인은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해, 일부 네트워크 병의원에서 흔히 사용하던 '차명개원' 방식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는 개인의 경제활동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고, 그것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절제되지 않는 자본주의는 사회의 양극화, 비인간화와 같은 부작용과 폐단을 초래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개인의 경제활동이 일정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업은 고도의 윤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의료윤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의료제도를 통하여 의사에게 양심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의료윤리 실천은 일차적으로 의사의 책임이기 때문에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의사는 '언제나 환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료윤리의 실천을 전적으로 의사 양식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으며, 의사에 대한 진료자율권 보장, 진료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요소의 배제,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등과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있을 때 진정한 의료윤리가 실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헌재의 판결은 의사들이 독점자본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양심의 자유를 지킬 수 있게 해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의료계에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

아무쪼록 '1인 1개소 법'의 합헌 판정이 모든 의료인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의료윤리와 인간성과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갈지를 한 번 더 고민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이런 고민은 모든 의료인에게 지워진 숙명이자 의무가 아니겠는가?

최재갑 경북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구강내과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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