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천(64) 누구나카페 범어점 팀장은 요즘 20대 청년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부모님을 여의고 고교생 동생과 마주한 암담했던 그 때보다는 물론 상황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일자리를 마련해야겠다는 절박함과 각오는 별로 다르지 않다.
수성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누구나카페 범어점(범어3동 행정복지센터 4층)은 공익형 노인일자리사업에 속한다. 청일점 김 팀장을 포함한 6명의 직원들은 일주일에 3, 4일씩 근무하면서 20~30만원 정도를 받는다. 사실상 봉사활동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김 팀장에게 누구나카페는 단순히 봉사활동의 장소가 아니라 취업실습 현장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해 여름 남구시니어클럽 바리스타 교육을 수료하고 또 다시 면접을 거쳐 누구나카페에서 근무하게 된 건 제2 창업과 제2 인생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최근 김 팀장은 7주간 일정의 원예치료사 과정을 등록하고, 조만간 제과·제빵 자격증 취득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기술을 배워 취업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이 나이에 취업을 한다는 건 사실상 힘듭니다. 그래서 힐링을 줄 수 있는 전원식 카페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돈을 버는 카페가 아니라, 즐겁고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카페 말이죠. 가급적 많은 일을 내가 직접 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제대로 배워야죠."
▶치열했던 삶, 꿈에 그리던 은퇴
사실 김 팀장은 우리나라 등산·레저·아웃도어 분야 1세대 사업가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밀레, K2, 블랙야크, 노스페이스 등이 2세대 기업인들로 이루어진 것을 고려하면 이 분야 원로로 꼽힌다. 관련 협회의 회장을 맡는 등 나름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시작은 미미했다. 건설업을 하시던 부모님이 부도나고 돌아가시면서 남은 재산은 300만원이었다. 20대 후반 100만원으로 신혼 전셋집을 구하고, 나머지 2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학창시절 좋아했던 등산·낚시의 용품을 회사 등에 방문 판매 하면서 시장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80년대에는 전국을 대상으로 한 제조와 판매, 유통으로 영역을 넓혔다. 2000년 접어들면서 아웃도어 의류가 대세를 이루며 체인 대리점 형태로 업태가 바뀌자, 제조를 포기하고 유통 중심의 멀티숍으로 시대 변화에 발 맞추었다. 일반 소비자 용품과 더불어 히말라야 원정대 등에 납품하는 전문장비를 취급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4시간 일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치열하고 숨가쁘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2011년부터 아웃도어 업계에 심각한 불황이 닥쳤습니다. 사업을 정리한 2017년에는 경기가 바닥을 뚫고 지하로 쳐 박히는 상황이었죠. 자식들도 3D(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직종이라면서 승계를 꺼려해 폐업을 결심했습니다. '만 35년을 죽도록 일만 했는데, 이제는 좀 쉴 때도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낭만적 은퇴생활은 없다
은퇴 생활의 시작은 순탄했다. 그동안 잠이 부족할 정도로 허덕이던 생활에서 벗어나 하루 10시간 이상 푹 자고, 틈이 나면 좋아하던 등산을 실컷했다. 사업을 하면서 알고 지내던 등산모임만 100여 개가 넘기 때문에 여기 저기에서 초청이 잇따랐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은퇴 전 등산·아웃도어 전문용품 사업을 하면서 취미였던 등산을 제대로 해보진 못했다.
가족들과 오붓한 해외여행도 즐겼다. 해외여행은 일부러 자유여행을 택했다. 가족들과 오손도손, 옥신각신, 티격태격 하면서 여행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뿌듯했다. 이제야 남편노릇, 아버지노릇 제대로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 였다. 은퇴 1년이 지나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내가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괜히 사업을 정리했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폐업하기 위해 8개월 이상 생고생을 한 걸 생각하면 과거로 되돌아간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70세까지는 버텨야 했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일 속에서 얻는 소소한 행복의 꿈
"자영업이나 사업을 하면서 은퇴를 생각하는 분들에게 '절대로 70세 전엔 은퇴하지 말라'고 조언 드리고 싶습니다. 저 역시 지친 삶 속에서 은퇴를 꿈꿨지만…….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일이 힘들면 일을 줄이세요. 그 대신 젊은 사람 한 명이라도 더 고용하세요. 돈 좀 덜 벌고 더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팀장은 젊은 시절처럼 열정적으로 생업에 몰두할 생각은 없다. 1년 남짓 짧은 은퇴 경험으로 미뤄볼 때, 하루 4~6시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안성맞춤이다. 주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월 50~60만원, 많으면 월 80~100만원 정도 수입을 가장 원한다.
"노후준비를 얼마나 잘 했느냐에 관계 없이 은퇴자들은 대부분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대체 언제까지 살지 알 수 없고, 노후준비를 잘 하면 그 만큼 지출이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지요."
김 팀장은 "정부나 사회에서 어르신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퇴자 스스로 자신의 일을 찾고 만들어가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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