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문을 연 런던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규모와 더불어 외벽을 장식한 갈색과 회색 테라코타의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느낌이 인상적인 곳으로, 런던을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로 소개되곤 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더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탁 트인 넓은 공간에 거대한 대왕고래가 마치 헤엄치듯 유유히 떠 있기 때문이다.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이 화석은 길이가 자그마치 25m에 달하며, 지구상 현존하는 동물 중 가장 큰 대왕고래의 모습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준다. 박물관에 전시된 각종 동식물의 화석과 표본은 생명체의 다양함과 풍부함, 더 나아가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들 대부분이 절멸하였다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되면, 갑자기 텅 빈 마당에 혼자 서있게 된 사람처럼 허전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최근 들어 동식물의 개체 수 급감이나 멸종에 관한 뉴스가 늘어나는 추세라 더 그렇다. 대왕고래도 한때는 인간의 마구잡이식 고래 사냥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무분별한 포획을 금지하는 국제 협약이 체결된 후 가까스로 멸종 위기는 넘긴 상태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라져가는 동식물이 희귀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늘상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던 그 많던 참새들, 다 어디로 갔을까? 포장마차마다 참새구이를 팔던 시절을 분명히 기억하는데, 지금은 그 흔하던 참새를 잘 찾아볼 수 없다. 어머니께서 가끔 옥상에 새 모이를 한 줌 뿌려주시면 참새 떼가 금방 모여들어 짹짹거리곤 했었지만, 이제는 쌀을 뿌려주어도 찾아드는 참새가 별로 없다. 꿀벌이 사라져서 인공수분을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다. 사라져가는 동물들은 지구가 우리에게 주는 다급한 경고가 아닐까?
생물 다양성의 파괴를 불러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요즘 전 세계의 화두가 된 기후변화도 그 주된 원인의 하나로 지목된다. 서유럽 알프스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에서 빙하가 녹아내려 붕괴 위기에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지구 곳곳에서 태풍과 홍수, 그리고 가뭄과 기근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일대는 지난해 극심한 가뭄으로 사람과 동물 모두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고, 유럽은 폭염과 홍수로 엄청난 피해를 보았는가 하면, 브라질과 볼리비아는 아마존의 산불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 지난달 20일,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런던, 베를린, 함부르크, 나이로비, 멜버른, 마닐라, 리우데자네이루 등 전 세계의 수천 개 도시에서 기후변화 반대 시위가 열렸고, 여기에 수백만 명이 참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극의 과학자들도 동참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화석연료 감축이나 소비와 생산 방식의 재검토라는 문제에 가로막혀 정치권과 기성세대가 머뭇거리는 사이, 젊은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번 시위가 '하나의 이념으로 뭉친 전 세계적 청년 운동'이 된 것은 기후변화와 그 원인인 환경파괴에 대해 젊은이들이 절박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미래가 있어야 한다"는 스웨덴 16세 소녀의 외침은 어떤 꾸지람보다도 호되다.
젊은이들의 요구에 솔직하고 책임감 있는 답을 해야 한다. 디스토피아가 아닌 희망의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야 한다. 기후변화와 혹독해지는 자연재해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바꾸라는 신호이며 문명의 도전이다. 소비문화에 근거한 개발과 경제발전 논리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환경을 돌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류의 과제다.
자연사박물관의 대왕고래에게 '희망'(Hope)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를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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