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가장 큰 사명은 공정 보도다. 하지만 가끔씩 뜻을 굽혀야 할 때가 있다. 집단 반발이 예상되는 보도를 할라치면 뒷골이 댕긴다. 특히 사회적 약자 편에 서지 않는 보도를 할 때 더 그렇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전통시장 영세상인들의 반발이 신경 쓰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는 전통시장과 영세상인을 살리기 위해 2012년 도입됐다. 과연 지난 7년 동안 전통시장의 경쟁력이 커졌을까. 불행하게도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모두 매출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보고서만 즐비하다. 문제의 원인을 다시 분석하고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대형마트 영업 환경은 말이 아니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국내 대형마트 1위인 이마트는 매출이 줄어들다가 지난 2분기에 창사(1993년)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다. 롯데마트도 같은 기간 수백억원대의 영업 손실이 발생했다. 홈플러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홈플러스 대표는 최근 전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매출 감소와 가파른 비용 상승으로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주 '대규모 점포 규제 효과와 정책 개선 방안' 보고서를 통해 대형마트가 마이너스 성장세로 바뀐 현 시점에서 규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대형마트가 한 달에 두 번, 그것도 매출이 최고 높은 일요일에 쉬게 되면서 가장 덕을 보는 것은 중형마트들이다. 식자재마트를 필두로 동네 목 좋은 곳에 자리한 중형마트들은 동네 슈퍼나 문구점 고객까지 싹쓸이하고 있다. 영세상인을 더 힘들게 하는 건 대형마트가 아니라 중형마트인 셈이다.
대형마트는 온라인쇼핑 확대와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데다 의무휴업을 하면서 중형마트들과의 경쟁에서도 뒤지게 된 것이다.
시민들은 잘 모르겠지만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바로 마트에 입점해 있는 임대점포 상인들이다. 통상 대형마트 매출의 17~20%를 이 임대점포들이 담당한다. 임대점포 점주들의 수입은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고도 한 달 평균 200만원을 넘기기 힘들다. 그나마 일요일을 포함한 주말에 매출을 높일 수 있는데 한 달에 두 번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그들을 절망하게 만든다.
대형마트들은 의무휴업으로 인해 온라인시장에서도 뒤처지고 있다. 일요일 휴무로 주문받은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제때 배송을 못한다. 시간 싸움에서 뒤지는 것이다. 빈곤의 악순환이다.
경쟁력을 만회하려고 만드는 신규사업은 상인단체 등의 반대로 관청의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구에선 이마트가 혁신도시에 출점을 시도한 '노브랜드'(초저가 매장)가 출점 유예 판정을 받았다. 그러던 사이 '다이소' 같은 매장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면서 골목 상권을 초토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제는 소비자의 권리도 반영해야만 한다. 지난 추석 대목에 낀 일요일(9월 8일)에 대형마트 의무휴무를 해제해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당국은 불허했다. 이로 인해 전통시장에서 장보기가 힘들었던 많은 소비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소비자들은 편리하게 쇼핑하고, 싼값에 믿을 수 있는 상품을 살 권리가 있다.
7년 전과 지금의 유통 환경은 천양지차다. 선거 때 표를 의식해 규제에만 몰두하다가는 우리의 유통산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전통시장 영세상인들의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규제폐지 주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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