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조커' 리뷰

코믹스 속 우스꽝스럽던 캐릭터의 탄생기, 페이소스 깊고 우아하게 표현
소외된 채 악의 길에 접어든 남자 '조커'의 슬픔 묘사, 배우 호아킨 피닉스 연기가 한 몫

영화 '조커' 스틸컷
영화 '조커' 스틸컷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는 소름 돋을 정도로 놀라운 영화다.

코믹스(만화)에서 나온 캐릭터를 이토록 깊이 있게, 우아하게, 그리고 절절하게 그려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조커가 미친 것인지, 세상이 그를 미치게 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미친 것인지. 영화는 악당 조커의 탄생기를 페이소스 깊은 현대 우화로 그려냈다.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 코미디언을 꿈꾸는 남자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을 웃게 하고 싶을 뿐이다. 홀어머니는 그를 '해피'라고 부른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웃음보가 터진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조롱하고, 학대하고, 비난한다.

지하철에서 세 명의 남성이 조커를 폭행한다. 그들은 한 여인을 희롱하던 참이었다. 조커가 웃는 것이 못마땅한 말쑥하게 차려 입은 백인 남성. 세상의 모든 슬픔을 광대 분장으로 감추던 조커는 마침내 분노하고, 세 명을 죽이고 만다. 이를 도화선으로 고담시는 혼란과 분노의 도시로 변해간다.

영화 '조커' 스틸컷
영화 '조커' 스틸컷

조커는 배트맨 시리즈의 대표 악당이다. 팀 버튼의 '배트맨'(1989)에서는 배우 잭 니콜슨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2008)에서는 히스 레저가 조커 역을 맡았다. 잭 니콜슨이 희화화된 전통적 조커 캐릭터였다면 히스 레저는 슬픔이 내재된 기이한 캐릭터로 등장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조커'의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이 모든 캐릭터를 흡수한 입체적 조커의 탄생 연대기를 온몸으로 그려낸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 영화를 "조커가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요약했다. 그래서 나약하고, 연약한 이 남자의 삶을 도화지 전체에 그려 넣는다. 어머니를 돌보는 착한 아들, 동료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직장인, 무대에서 외면 받는 코미디언, 세상을 향한 그의 순박한 몸짓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미디어, 그럼에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비정한 도시.

그가 악을 선택했을 때 비로소 그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서서히 그는 더러운 둥지의 알을 깨고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넓은 도화지의 그림들이 점차 압축되면서 조커의 치켜세운 핏빛 입술로 모아진다. 조커의 홀로서기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영화 '조커' 스틸컷
영화 '조커' 스틸컷

그러나 영화는 여기에 비루한 현대의 참상들을 갖가지 색깔로 채색한다. 폭력의 일상화, 예의 없는 질서, 빈부의 격차, 메마른 관계, 그럼에도 멀쩡한 것으로 치장된 위선. 영화는 이런 현대의 삶을 조커를 통해 야유하고, 분노한다. 그래서 미국 주류 언론은 마치 시위 유인물을 보듯 '조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조커가 악당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런 캐릭터를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그려낸다.

폭력의 아이콘들이 빼곡한 '조커'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우아하다. 바로 슬픔이 있기 때문이다. 조커가 춤을 출 때는 숨이 멈춰질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화장실 안에서 또 계단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그가 추는 춤은 마치 온 세상을 다 감싸는 듯하다. 슬로우 모션이라서 더욱 감상적이다.

영화 '조커' 스틸컷
영화 '조커' 스틸컷

호아킨 피닉스의 미친 듯한 연기가 이런 서정성을 끌어올린다. 그는 2017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서 '몸덩이' 중년남을 보여줬다가도 '조커'에서 홀쪽한 남자로 변신했다. 깊은 눈, 살 빠진 뺨, 탁한 웃음과 흔들리는 눈빛. 갈비뼈가 확연한 배와 멍든 등가죽이 조커의 삶을 전율할 정도로 전해준다. 호아킨 피닉스는 요절한 배우 리버 피닉스(1993년 사망)의 동생이기도 하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곡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이를 조커는 "삶은 멀리서 볼 때는 비극이더니, 가까이서 보니 개떡 같은 코미디"라고 변주한다. 세상에 대한 지극히 조커다운 선전포고다.

'조커'는 DC 코믹스의 영화답게 브루스 웨인 가문과의 연결고리를 그려내는 친절함도 있다. 이를 통해 조커의 피맺힌 원한의 실마리도 풀린다.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생방송 토크쇼 진행자로 나온다.

아날로그같은 콘트라스트 깊은 영상과 짙은 색감도 고담시라는 이질적 도시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주고, 높은 현악의 음들이 배경에 깔리면서 조커가 성장하며 알을 깰 때의 긴장감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조커'는 히어로물의 캐릭터를 가장 작품성 높게 그려낸 영화다. 각본도 훌륭하고 연출도 짜임새가 있다. 그래서 올해 베니스영화제는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안겨주었다. 극장에서 놓치면 아까울 영화다. 되도록 화면은 아이맥스, 음향은 돌비 애트모스로 관람하기를 추천한다.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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