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이 보수를 갈랐다면, 조국 사태는 진보를 가르고 있다."
서울에 사는 선배 K가 전화로 꺼낸 말이다. 술기운을 빌렸다고 한다. 그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졸업 후 밥벌이를 하면서도 시민운동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래서 조국을 지지했다. 하지만 조국 관련 의혹들은 그를 괴롭혔다. 설마설마하다가 지금은 믿음을 버렸다고 한다. K는 "많이 헷갈렸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조국을 지키는 것이 진보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는 쪽으로 정리했다. 검찰 개혁이 중요하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수 진영의 정치 공세에 밀려 조국이 낙마하면 정권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가 늘 비판하던 적폐다. 불법이 없다고 해도 이미 조국은 정의, 평등, 공정이라는 진보의 가치를 오염시켰다. 친구들과 이런 얘기를 하면서 다툰 적도 있다"고 했다. K는 '사상 전향'이라도 한 것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진보 진영에서 다른 의견을 표출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김경율 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조국 장관 가족의 사모펀드 의혹을 옹호하는 시민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참여연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정의당은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탈당 의사 표명으로 내홍을 치렀다. 범진보가 똘똘 뭉쳐야 한다는 의견과 불평등·불공정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고 한다. 진 교수는 조국 교수의 장관 임명 전 반대 의견을 정의당에 전달했지만, 당은 '데스노트'에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의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이후 심상정 대표의 만류로 탈당을 철회했다) 진 교수는 지난달 30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황우석 사태도 아니고, 다들 진영으로 나뉘어 가지고 지금 미쳐버린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금태섭·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국 장관 인사 검증 과정에서 '소신 발언'을 했다가 비난성 문자 폭탄을 받았다.
성찰과 내부 비판이 없는 폐쇄적 진영주의는 민주사회의 독이다. 문재인 정부와 진보 진영은 촛불정신과 민주화의 주역임을 자처한다. 그런데도 불통과 닫힌 모습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내부 총질'로 정권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 '단일대오'만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덮는다고 사라지지 않고, 외면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진보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정권 재창출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정치가 발전한다.
문재인 정부와 진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보수의 쇠락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불평등·불공정을 바로잡는 게 우선이다. 내부 비판을 '총질'이 아닌 '충언'으로 여겨야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폐쇄적 진영 논리에만 매몰되면 권력 투쟁만 되풀이된다.
진보 진영 내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에게 부탁한다. 부디 본연의 책무를 잊지 말기를. 지지 정당이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감시와 비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식인은 권력에 거리를 두고, 권력을 비판해야 한다. 장 폴 사르트르가 정의한 지식인이 절실한 시대다. 그는 "지식인은 부유하는 존재, 주변부적 존재, 계급적 귀속성이 애매한 존재다. 지식인은 인간 해방과 같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며 다양한 권력과 그 작용 과정을 비판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사람이다."
※필자의 어설픈 주장은 보수 진영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권력을 가진 진보 진영에 먼저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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