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창천불부고심인(蒼天不負苦心人)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올 한 해 정부 청년정책 예산 20조
그럼에도 현실은 나아지는 게 없어
청년이 힘든 건 구조적 문제이지만
스스로 애쓰면 하늘은 버리지 않아

20조7천917억원, 올 한 해 정부의 청년정책 관련 예산이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17개 부, 보훈처 등 3개 처, 조달청·병무청 등 7개 청,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한 3개의 위원회가 이 돈(세금)을 썼거나 쓰고 있다. 청년일자리 사업, 청년고용지원 사업, 청년병사목돈마련지원 사업,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 등 해당 사업의 수만 153개에 이른다.

내년엔 '햇살론 유스'도 나온다. 청년에게 생활자금을 저리로 빌려줘 취업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신경을 많이 쓴다. 대구시의 '대구형 청년보장제', 서울시의 '청년자율예산제' 등이 모두 청년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에서 나온 정책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과 정책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여전히 힘들다.

지금 "청년은?"이라고 물으면 거의 공식처럼 '힘들다'가 따라붙는다. 정책만 보면 우리만큼 청년을 위하는 곳도 잘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심지어 매번 선거 때마다 청년공약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나름 말발 있는 인사들이 하나같이 청년을 외치는데도 현실은 좀체 나아지는 게 없다. 오히려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를 거쳐 'N포 세대'에 이르기까지, 청년은 사랑을 포기하고 우정을 포기하고 희망과 꿈을 포기하고 마침내 이것저것 다 포기하는 포기의 아이콘처럼 되고 말았다. 그간 '포기'의 개수만 늘어난 셈이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정부의 시각에서 보면 청년세대는 사회적 약자에 가깝다. 정책도 여기서 출발한다. 즉, 청년이 힘든 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 최대한 청년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들도 맥락이 비슷하다. 청년이 어려운 건 시대의 잘못이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성찰해야 하고 정부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이른바 주류적 견해로 정설처럼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청년에겐 잘못이 없으니 그들을 탓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박 사장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가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일자리가 없다고? 하루 이틀 출근하다 안 나오거나 채용면접에 연락도 없이 안 나타나는 청년이 부지기수다. 그들은 사회로 내딛는 첫발을 거짓말과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옆에 있던 김 부장도 거든다. "위에선 누르고 밑에선 치고 올라와서 힘들다는 거 있죠? 그거 다 옛날 말입니다. 요즘 애들은 스펙은 그렇게 쌓으면서 정작 실력은 쌓으려 들지 않습니다." 듣고 있던 최 사장도 한마디 보탠다. "그저 자기 것만 챙기려드니 원, 요즘 청년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며? 허허."

참았다는 듯 이 과장도 입을 연다. "요즘 애들은 연애 말고는 딱히 관심 있는 게 없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못하는 건 뭐라 안 해도 이성 친구가 없으면 '루저'라고 하거든요. 진짜 청년정신을 가진 청년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세상이야 어떻든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자기들 자리만 차지하려 드는 겁니다."

이들의 발언은 위험하다. 요즘 같은 분위기상 낡은 사고에 젖은 '꼰대'로 찍히기 십상이다. 말하다가도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걸 보면 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N포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온 지도 수년이 지났고 갖은 정책들도 별 효과를 못 거두고 있다면 한 번쯤 청년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도도 있어야 한다. 한 청년은 단군 이래 지금이 돈 벌기 가장 좋은 시대라 하고 다른 청년은 내가 영어를 못하는 건 부모가 가난해 유학을 못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한 세대로 묶기 어려울 만큼 큰 차이를 보이는 게 요즘 청년세대의 특징이다. 따라서 청년정책에 대한 기준도 좀 더 다양해져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스스로의 의지로 도전하는 청년이 있다면 그들에겐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약 그들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과 사회적 역량이 집중되어야 한다. 덧붙여, 청년에 대한 비판과 요구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고로 낡아(?) 보이는 박 사장 일행의 말에 낡은 스타일로 한 줄을 더 보탠다. "창천불부고심인(蒼天不負苦心人) 즉, 하늘은 스스로 애쓰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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