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할 말 못하는 총리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앞 사람의 실패를 보고 뒷사람은 마땅히 경계할 것입니다…개과자신(改過自新·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함)하여 영원히 국가의 수명을 누리게 하소서."(이순)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라."(충담사)

신라가 통일되고 경덕왕이 그 덕에 전성기를 누린 까닭은 있다. 왕에게 할 말을 하는 신하와 백성이 있고, 왕은 귀를 연 때문이다. 763년 8월, 경덕왕이 음악을 즐긴다는 소문에 왕의 총애에도 관복을 벗고 입산, 출가했던 이순(李純)이 찾아와 입을 열어 말렸고 왕은 따랐다.

왕은 765년 3월, 지나는 충담사를 불러 백성을 다스려 편안히 할 노래를 부탁했다. 오늘날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전하는 14수 향가의 하나인 '안민가'는 그렇게 탄생됐다. 이에 왕이 왕사(王師)로 삼으려 하자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스님은 할 일을 거기까지로 그쳤다.

앞서 경덕왕 14년(755), 경주 망덕사 두 탑이 흔들렸다. 마침 당나라는 755~763년 안록산과 사사명이 반란을 잇는 혼란에 빠져 현종과 양귀비가 죽고 나라는 위기였다. 이런 틈을 타 백제 멸망 이후 사이가 나빠진 일본이 756년부터 6년 기한으로 신라 정벌을 준비했다.

다행히 경덕왕은 망덕사의 흔들린 두 탑의 징조에다 일본의 침략 준비 정보를 미리 입수, 군제 개편 등 발 빠르게 대비했다. 게다가 신라와 우호 관계였던 발해가 일본이 내민 신라 정토(征討)의 검은손을 뿌리친 외교 행운도 겹쳤으니 세상 소리에 귀를 연 경덕왕이 신라 56왕 중 찬란한 시기의 영광을 누릴 만했다.

도종환 시인은 문재인 정부의 장관으로 발탁되기 전 시절인 2008년, 한 언론에 쓴 글에서 "왕이 정사를 조금이라도 게을리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단걸음에 달려가 '개과자신'하기를 직간하는 태도는 얼마나 늠름합니까"라며 부러워했다. 시인 마음이 같다면 대통령과 조국 법무부 장관에게 지금 그러면 어떨까.

도 시인이 아니라도 좋다. 최장수 국무총리 자리를 지킬 이낙연 총리면 더욱 좋다. 최근 국회에서 조 장관 해임 건의 요청에 총리는 "훗날 저의 역할이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은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며 발을 뺐다. 귀를 닫은 대통령과 조 장관에게 '할 말'을 하는 모습을 역사에서만 상상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