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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에 얽힌 이야기 <20> 악보를 통째로 외우는 지휘자들

지휘자 토스카니니
지휘자 토스카니니

1908년 11월 16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20세기 최고지휘자로 꼽히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는 지휘대에 올라서자마자 악보를 덮고 연주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펼치지 않고 지휘했다. 언론들은 악보 없이 지휘하는 토스카니니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리스트였다. 하지만 시력이 좋지 않아 연주할 때 악보를 볼 수 없었다. 그는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악보를 통째로 외울 수밖에 없었다. 한 연주회 때 지휘자가 악단과의 불화로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자 토스카니니가 임시 지휘자로 지휘대에 섰다. 이후 그는 지휘자로 전향했다. 그만큼 토스카니니는 자기 파트의 악보만이 아니라 다른 악기 파트의 악보까지도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수십 년간 베를린 필을 이끌었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역시 눈을 지그시 감고 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휘를 할 땐 악보도 단원도 보지 않는다.

이 외에도 푸르트 뱅글러나 로린 마젤, 클라우디오 아바도도 암보(暗譜:악보를 외워 기억함) 지휘로 유명하다.

지휘자는 어떻게 그 긴 악보를 외울까? 그들은 '포토그래픽 메모리'(photographic memory)라는 원리로 악보를 외운다. 악보 한 쪽 한 쪽을 사진 찍듯 통째로 기억해 외워버리는 것이다.

지휘자는 암보를 하면 시선을 악보에 붙잡히지 않고,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신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또 청중들과 단원들에게 음악을 잘 한다는 지휘자로 보여져 일종의 신뢰감도 줄 수 있다.

반면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을 고집하는 지휘자도 있다. 어떤 지휘자는 암보를 하고도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악보를 보면대(연주할 때 악보를 펼쳐서 놓고 보는 대)에 놓고 지휘하기도 한다. 연주하는 동안 집중력을 흐트러져 다음에 연주할 음표가 떠오르지 않아 연주를 망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암보를 자랑했던 토스카니니도 87세이던 1954년 바그너 음악회에서 지휘하던 중 일시적 기억장애로 잠시 머뭇거려 연주회를 망치기도 했다.

따라서 암보를 하고 안 하고는 지휘자의 스타일일 뿐 암보 자체로 연주력을 평가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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