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이러려고 뽑아줬나" 자괴감 들어

자괴감 들고 괴로워

2일 대구 동구의회 본회의장에서 한국당 소속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의장 불신임 결의안에 대한 안건 처리가 진행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2일 대구 동구의회 본회의장에서 한국당 소속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의장 불신임 결의안에 대한 안건 처리가 진행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김근우 사회부 기자
김근우 사회부 기자

"동네 정치에는 정당이 없습니다. 지역 주민들의 가장 가까이에서 초당적으로 봉사하는 자리이기 때문이지요. 의장단을 별도 투표 없이 만장일치로 추대한 게 첫 출발입니다."

지난해 7월 제8대 대구 동구의회가 출범할 당시 구의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지역사회와 가장 밀접한 기초의회이기에 정당 간의 소모적 정쟁보다는 생산성 있는 의정활동을 펼치겠다는 각오였다. 이런 각오는 원 구성 당시만 해도 '유효'한 것처럼 보였다. 동구의회는 더불어민주당 7명, 자유한국당 8명, 바른미래당 1명이 당선돼 의장단 구성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판단됐지만, 오히려 최초로 의장단을 만장일치로 선출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월 오세호 전 동구의회 의장은 매일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의장단은 물론, 상임위원회 구성과 위원장 선출 과정에서도 큰 잡음이 없었다. 구의원 상호 간 배려와 화합, 소통을 중요시한 결과여서 의장으로서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 전 의장은 인터뷰가 게재된 지 불과 9개월 만에 타의로 자리를 내려놓게 됐다. 한국당 소속 황종옥 전 운영위원장과 김태겸 구의원이 이재만 전 한국당 최고위원의 불법 선거운동 사건에 연루돼 의원직을 상실한 게 발단이었다.

공석이 된 운영위원장 자리를 놓고 잠잠하던 '정쟁'이 고개를 들었다. 한국당 구의원들은 "이주용 부위원장이 직무대행을 맡다가 그의 거취가 확정되면 차기 위원장을 선출하자"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구의원들은 "이 부위원장 역시 선거법 위반 및 위증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어 직무대행에 부적합하니 새롭게 선출하자"고 요구했다. 이 부위원장은 한국당 소속이다. 결국 단 3석뿐인 상임위원장을 어느 당이 차지할지를 놓고 '원조 다수당' 한국당과 '새 다수당' 민주당이 힘겨루기를 벌인 것이다. '소모적 정쟁보다 생산적 의정활동'이라는 표어가 무색하게 의회는 한 달이나 공회전하다 사상 첫 '의장 불신임' 사태까지 일으키고는 반으로 쪼개졌다.

이는 동구의회 소속 구의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당선 당시 내걸었던 초심을 모두 잊은 죄다. "동네 정치에 정당은 없다"는 호언과 달리 이들은 정당을 중심으로 뭉쳐 갈등을 극한까지 몰아붙였다. 행정사무감사를 비롯한 구의회 주요 업무가 마비됐고, 구의원 간 감정의 골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오 전 의장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의장으로서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일방적으로 한국당 측 의견에 손을 들어주며 표결을 거부하는 등 사태를 더 키운 탓이다. 그는 이번 불신임에 대해 "다수당의 횡포"라며 반박 성명을 내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상대가 다수라는 점을 알면서도 한 치의 양보조차 거부하는 아마추어적인 정치로 극단적 결말을 자초한 것이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재보궐선거를 치르면 한국당이 다시 다수당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지역사회 전반의 친(親)한국당 정서를 고려할 때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한국당은 다수당 지위를 잃고도 재보선까지 원 구성 변동을 원치 않았고, 민주당은 이를 극구 반대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런 정치적 구도보다 "자괴감은 우리 몫"이라는 자조의 목소리가 더 크다. 기껏 뽑아 놓은 구의원들이 본업인 동네 정치보다는 정당 간 편 가르기와 힘겨루기에 골몰하는 모습만 봤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커진 구의원들 간 감정의 골도 크지만, 구의회와 주민 사이에 벌어진 골을 메우는 일이 먼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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