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주 생활사 스토리 텔링] 성주사고 태운 비둘기

지금은 없어진 성주사고를 알리는 터에는 표석과 함께 회화나무가 세월을 기억하고 있다. 박노익 선임기자
지금은 없어진 성주사고를 알리는 터에는 표석과 함께 회화나무가 세월을 기억하고 있다. 박노익 선임기자
성주사고와 같은 시기에 세워진 전주사고의 복원모습. 성주사고도 이를 바탕으로 복원할 것으로 보인다. 성주군 제공
성주사고와 같은 시기에 세워진 전주사고의 복원모습. 성주사고도 이를 바탕으로 복원할 것으로 보인다. 성주군 제공

2층 건물의 성주사고는 1538년과 1592년(임란) 불에 탔다. 특히 1538년 11월 6일 화재는 석연치 않다. 당초 경상감사가 '바람이 사납고 추위가 심하여 동사할 우려가 있으므로 불을 때고 취침'한 탓에 일어난 실화라고 보고하자 조정은 방화 혐의로 100여 명을 조사했지만 실화로 결론을 내렸다. 실화자로 노비 부자(父子)가 지목됐다.

"관노 종말(從末)과 그의 아들 말이(末伊) 등이 사고의 누각 위 중층에 산비들기가 모여 잠자는 곳에서 불을 켜들고 그물을 쳐서 비둘기를 잡다가 불이 창 틈으로 떨어졌고 비둘기 둥우리로 인하여 불이 났는데 마침 바람이 세차게 불었으므로 걷잡을 수 없이 타버린 일로, 세차례 형신을 받고서 승복하였다."

당일 숙직자는 기관(記官) 여환과 감고(監考) 배귀손인데, 실화자는 노비 부자로 지목됐다. 왜 한겨울에 비둘기를 잡으려 했을까? 알 길 없다. 정인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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