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의 실존을 철학적 화두로 삼아 그림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화가 장경국(53)은 스스로를 몽상가라고 여긴다. 중학시절 우연히 읽은 카뮈의 '이방인'에 시쳇말로 필이 꽂혀 삶의 부조리와 인간 실존의 문제와 조우하면서 폭넓은 독서량을 쌓았고 현재는 그것이 밑바탕이 되어 그림을 그리는 원동력이 됐다.
"대학 졸업 후 1994년 전시회 이후 제 모든 작품을 폐기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도 한 작품을 했다가 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전 작품은 없애버립니다. 제 그림은 일정한 대상을 보고 그리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경국은 주로 인물화를 중심으로 풍경과 정물을 화폭에 옮기고 있다. 그에게 인물화는 인간에 대한 궁금증의 발로이며 때론 천진난만한 모습과 때론 고뇌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데, 그림을 처음 대하는 순간의 느낌은 '아! 이럴수가…'할 정도로 공감의 탄성을 자아낸다.
"인물화가 인간 실존과 자아에 대한 반성의 결과물이라면 풍경과 정물화는 자연적 대상과의 교감을 통한 생명존중을 메시지로 담고 있습니다. 제 그림을 보고 삶에 대한 반성과 회고, 또는 어떤 물음표를 던져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사각의 박스 안에 웅크리고 있는 한 남자를 그린 '화가의 방'은 두 눈을 부릅뜨고 시선을 위로 향하고 있다. 그는 한 손에 붓을 잡고 다른 한 손을 위호 들어 손가락으로 무슨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그 팔과 손의 모습이 노동자의 그것과 닮아있다. 그림 속 붓질도 마치 세포가 살아있는 근육질처럼 생생하다.
아빠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딸을 그린 '가족'과 한 남자가 등 위에 마치 부처처럼 보이는 사람을 업고 있는 '낙타의 등'은 실존적 무게를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그림을 본 관객은 거울을 본 것과 같은 뜻밖의 사건과 돌발 상황에 충격을 받는다.
새장 안 소년과 참새를 그린 작품 '몽상'은 무언가로부터 속박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이내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모순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작가는 자유와 구속이라는 이분적인 사고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소년의 표정을 해맑고 새장의 창살들 사이 간격도 넓다. 이는 곧 참새나 소년이 원하면 언제든지 새장을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대구 미술계에서 장경국 작가는 흔히 '은둔의 작가'로 불린다. 그는 은거하다시피 팔공산 작업실에서 그림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대구문화예술회관 선정 '올해의 청년작가전에 뽑혀 개인전을 연 이래 13년 만에 그의 두 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9월 서울에서 '장경국의 오프스테이지'(Offstage)전이 열렸고 이달 4일 동원화랑에서 '장경국의 온스테이지'(Onstage)전이 막을 올렸다. 그의 최신작 20여점이 선을 보인다.
"나는 오늘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을 헤매듯 흰 캔버스 위를 더듬고 할퀴고 긋고 지워나갑니다. 그러다 보면 어렴풋이 한 인간을 만나게 됩니다. 허구의 인물인 거죠. 그러나 완전한 허구란 존재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허구의 인물들이 관객의 감정이입과 공감을 통해 실존적 인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합니다."
작가의 말처럼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한 예술가의 작품을 통해 관객은 과거 현재 미래의 나 자신의 자화상을 둘러보는 것 또한 인물 전람회가 주는 묘미라 할 수 있다. 전시는 25일(금)까지. 문의 053)42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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