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빌려줘도 도장은 빌려주지 마라'는 말이 있다. 도장은 곧 그 사람의 분신이자 신표(信標)이므로 도장을 넘겨주는 것은 자신의 권리와 의사를 고스란히 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60여 년 도장을 새겨오고 있는 채홍달(75) 씨는 "도장의 글자 한 획, 점 하나에는 예술성과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어 좋은 도장은 찍으면 찍을수록 멋이 스며 나옵니다"면서 "제가 새긴 도장 덕에 일이 잘 풀렸다며 다시 찾아주시는 분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장인의 혼이 담긴 '도장'
대구역 네거리 북성로쪽에서 도장포 '인문당'(印文堂)을 운영하고 있는 채홍달 씨. 하루 종일 손때 묻은 조각도로 직경 1.5㎝ 안의 우주에 혼을 담아 내고 있는 그는 60여 년 도장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그의 작업대에는 도장을 새길 때 재료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켜주는 도장틀과 여러 개의 조각도, 그리고 돋보기 안경이 전부다. 직접 만든 도장틀과 칼은 수십 년이 넘은 것으로 새카만 손때가 잔뜩 묻어 있다.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머리는 하얗게 빛이 바랬고 굳은살이 박힌 손은 투박하다. 그러나 안경 너머로 뿜어져 나오는 눈동자만은 또렷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1958년부터 도장을 새겼으니 올해로 꼭 61년이 됐네요. 허허허."
그의 손에 잡힌 조각칼이 지나가면 무명의 도장은 주인을 찾는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그의 칼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람의 이름 석 자가 새겨질 때 비로소 그의 혼이 밴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채 씨는 "도장 새기는 일은 곧 신분증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이곳에서 하루종일 도장을 새기고 이웃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하루가 저문다"고 했다.
상주가 고향인 채 씨는 5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도장 새기는 일을 즐겨했다. "부러진 톱을 갈아 진달래 뿌리나 측백나무, 도토리에 도장을 새겼다. 새긴 도장은 중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에게 주기도 했는데, 교복입은 친구를 많이 부러워 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어느날, 서울 사는 고향 분이 면사무소에 볼 일을 보러 왔는데, 도장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도토리로 도장을 파줘 무사히 일을 끝냈다. 그분이 고맙다고 하길래 아무 일이나 잘 할테니 서울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갔다." 그때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1958년이었다.
채 씨는 도장골목인 창신동과 서울역 등에서 도장 새기는 일을 배웠다. 5·16 직후에는 관공서 직인을 한문에서 한글로 바뀌는 과정에 참여해 하루종일 도장을 새기기도 했다.
그렇게 20년 동안 서울서 도장 일을 배운 뒤 1978년 대구로 내려와 지금의 자리에 책상 하나 놓고 '인문당'을 차렸다.
채 씨는 서예와 인장학, 역학 세 가지를 접목해 도장을 새긴다. 좋은 재료에 인장가의 서법과 철학까지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야 길상인(吉祥印)이 태어난다는 것. 도장은 이름자의 획수에 따라 印(인), 章(장), 信(신) 중 어느 첨자를 쓸지, 어떤 서체를 쓰고, 테두리와 글씨 중 무엇을 가늘고 굵게 할 것인지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이름만 새겨도 획수가 좋을 경우엔 그렇게 하고, 이름만 새길 경우 획수가 좋지 않을 때에는 인(印·6획), 신(信·9획), 장(章·11획)자를 덧붙여 길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채 씨의 설명이다. "손님의 인격이 제 손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인데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죠."
도장의 재료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바뀌었다. 채 씨가 처음 입문했을 때엔 주로 나무로 도장을 새겼고 고급 도장인 경우엔 상아와 물소뿔이 쓰였다. "요즘에는 이른바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뜻하는 벽조목 도장을 많이 찾고 있다"고 했다.
채 씨는 사인(sign) 문화가 도입돼 예전에 비해 일감이 줄었다고 했다. "요즘은 법인도장이 대부분이고, 할아버지가 손주 백일이나 돌 때 통장을 만들어 인감도장과 함께 선물하거나 부동산 거래 등 급한 일로 도장이 필요한 사람이 막도장을 주문해오는 정도"라고 했다.
채 씨는 도장을 새겨주면서 보람을 느끼는 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 손님은 도장을 잘 새겨줘 딸이 서울대에 들어갔다며 인사하러 온 적도 있고, 사업을 하는 분은 제가 새겨준 도장 덕분에 사업이 잘된다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럴 때 기분이 좋다. 5공화국 때는 일본 여행객이 자국에서 도장 새기는 값이 비싸다며 상아를 여러 개 가져와 새겨 준 적도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도장을 버리는 시대가 됐지만, 도장의 힘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채 씨의 생각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서명이 도장을 대신하거나 도장이 필요하다면 5천원짜리 막도장을 파서 쓴다. 그런데 큰 계약건이나 건물 매매 등에는 아직도 인감을 사용하는 일이 많다"며 "그런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가게 문을 열어 놓는다"며 활짝 웃었다.

◆세상에 딱 하나뿐인 도장……아직도 수작업 고집
채 씨는 지금도 손으로 도장을 판다. 컴퓨터를 이용해 기계 도장을 새기는 게 대세인 요즘에도 채 씨는 직접 수조각(手彫刻)으로 새기는 손도장만을 고집하고 있다. "기계로 새긴 도장은 똑 같은 것을 만들 수도 있지만 사람 손으로 새긴 도장은 똑 같은 것을 다시 만들 수 없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도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손으로 새긴 도장은 위조를 못한다"며 빙그레 웃는다. 도장이 기구이기 이전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 작품'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채 씨는 금속 촉으로 대강의 여백을 파내고 다시 도장틀에 고정해서 칼로 이름을 새겨나간다. 그렇게 하나의 도장이 완성되는 시간은 대략 30∼40분, 재질이 단단하고 크기가 크거나 글자 수가 많으면 두세 배의 시간이 더 걸린다. 복잡한 낙관용 도장은 네댓 시간도 훌쩍 잡아먹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할 터"
60년 도장 인생에 아쉬운 점은 없느냐는 질문에 채 씨는 "도장 새기는 일로 2남1녀를 잘 키워 출가시켰다"며 이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요즘은 일감이 줄었지만 매일 출근한다고 했다. 오전 9시쯤 문을 열어 주문 받은 도장을 새기거나 이웃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소일한다. "이곳이 나의 놀이터다. 아침에 일어나 어디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도장 생기는 일을 잘 배운 것 같아요."
채 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할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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