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국민은 정치인의 팬이 아니다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조국 장관과 관련된 여러 사안의 진상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모펀드, 웅동학원 등의 문제는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조 장관 딸 논문에 관한 그의 증언은 거짓이라고. 학교와 관련된 문제만은 분명한 진상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처지이다.

조 장관은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학교에서 사용한 중고 컴퓨터(PC)를 집에 가지고 갔고, 딸이 서재에 있는 그 컴퓨터로 논문을 작성했다." 딸이 제1저자로 등재된 논문 초안의 문서 속성에 작성자와 수정자 모두 '조국'이라고 나타난 데 대한 설명이었다. 딸의 논문을 전혀 몰랐다는 선행 증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속한 대학에서도 연구실 컴퓨터를 주기적으로 교체해 준다. 중고 컴퓨터를 집으로 가져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구실 컴퓨터는 대학의 재물이기 때문에 관재팀에서 반드시 회수한다. 돈을 주고 구입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절차를 밟게 되어 있다. 혹시나 해서 대학 관재팀 관계자에게 확인해 보았다. "말도 안 되죠"가 답이었다. 하물며 국립서울대학교의 물품관리 규정이랴.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은 기억할 것이다. 서울대 규정을 근거로 재차 추궁하는 의원에게 조국 후보자가 답하던 모습을. "PC를 들고 나왔는지 프로그램만 복사한 것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중고 컴퓨터는 나중에 반납했다는 말도 있었다.

새삼 조국 장관의 위선을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언론들은 대부분 '맹탕 청문회'라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상식과 합리로 보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조국 후보자의 본 모습을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청문회에서 주어졌다. 계속 드러나는 사실도 이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의학 논문은 이미 취소되었고, 서울대, KIST 인턴 등도 실체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통탄할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조국 수호' 구호가 난무하고 있는 사실이다. 심지어 '내가 조국이다' '우리가 조국이다'라는 말들도 거리낌 없이 등장한다. 혹자는 검찰과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수구 세력의 반격이기 때문에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검찰 수사가 과도하다는 지적은 할 수 있지만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동의어로 쓰는 것에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눈과 귀를 모두 가린 외곬 진영 논리라는 것 외에 다른 말을 찾지 못하겠다.

'정치인의 팬 문화가 민주주의를 삼킨다.' 지난 9월 11일 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아만다 헤스의 칼럼은 시사적이다. 헤스의 글은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등 유력 정치인들을 영화 주인공, 유명 가수 등 연예인들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오늘날 정치에 대한 경험은 과거와 달리 주로 이러한 팬덤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인에 대해 열광하는 정치적 팬덤 현상은 오래된 일이다. 영국의 대처 총리,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 등도 열렬한 팬 층을 거느린 정치인이었다. 문제는 단순한 지지와 성원이 광적인 팬덤으로 변할 때 생겨난다. 연예인에 열광하는 팬은 대부분 스스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주체가 아닌 조작과 선동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특정 정치인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국민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지 혼동을 일으키기 쉽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원리가 실종되어 버린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난 시절 촛불 시위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헌법 구절이다.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민주공화국의 핵심 원리이다. 국민이 주인이요, 정치인은 주인인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 공복일 뿐이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성원과 지지를 넘은 정치인에 대한 무조건적 열광은 주권자의 지위를 스스로 팽개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 수준을 넘는 정치를 갖기 어렵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도 진리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민이 주인이다. 주인이 하인에게 열광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주권자는 정치인의 감시자일지언정 팬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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