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카 만년필, 지포 라이터, 그리고 금줄이 달린 회중시계. 그 세 가지 정도는 갖추어야 멋쟁이라 할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말이다. 어릴 적에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말인데, 그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철이 들어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양복 입은 사람을 보면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 시절엔 양복 입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쩌다 양복 입은 사람을 보아도 앞서 말한 물건으로 치장을 한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다. 한번은 역에 나갔다가 기차에서 내려 나오는 사람들을 보았다. 몇 사람이 어울려 걸어 나오는데, 중절모를 눌러 쓴 사람이 있었다. 양복 윗주머니에 반짝이는 만년필을 꽂았고, 조끼주머니에는 금줄을 드리운 회중시계가 보였다. 그 시절 고급 회중시계는 남자의 재력을 드러내는 물건이기도 하였다. 단번에 멋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에 다닐 적 이야기다. 처음으로 철필이란 것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펜촉을 잉크에 찍어서 쓰도록 되어 있었다. 연필로 글씨를 쓰다가 펜으로 쓰니까 선명해서 좋았다. 그런데 가끔 잉크가 담긴 병을 쏟아서 책이며 옷을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잉크병 안에다 솜을 넣어서 쏟아지지 않도록 하였으나, 여전히 문제는 있었다. 다 쓴 뒤 펜에 남아 있는 잉크를 없애려고 흔들다 보면 다른 사람의 옷이나 책 같은 데 튀어서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어른들을 따라 관청에 갔었다. 거기서는 직원들이 철필로 글씨를 쓰는데, 얼마나 잘 쓰던지 넋 잃은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또 호적을 담당하는 직원은 얇은 종이를 몇 장 겹쳐서 놓고 그 사이에 시커먼 종이를 넣어 글씨를 쓰기도 하였다. 그것이 먹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글씨 잘 쓰는 사람이 부러웠다.
만년필을 가지고 싶었다. 어른들께 말씀드렸더니 대학교에 들어가면 선물로 사주겠다고 하셨다. 서운했다. 한동안 말없이 부루퉁해 있다가 웃음을 되찾았다. 뜻밖에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집안 형님이 쓰던 파카 만년필을 선물로 주셨다.
글씨가 얼마나 매끄럽게 잘 쓰이던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친구들은 '왕거미 엉덩이에서 거미줄 나오듯 한다'며 웃었다.
만년필에 대한 애착이 더욱 깊어졌다. 외국에 나가는 기회가 있으면 다른 것은 안 사도 만년필은 한 자루 샀다. 글 쓰는 사람이니까 만년필 사치 정도는 용서 받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인연으로 여러 자루의 만년필을 가지고 있다.
품격의 상징으로 꼽히는 몽블랑도 있는데, 실수로 떨어뜨려서 여기저기 상처가 났다. 속을 끓이다가 미국에 가는 기회가 있어서 몸통을 교환하였다. 거금을 들여 수리하였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