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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의 시사로 읽는 한자] 兎死狗烹(토사구팽)-쓸모가 다하면 버려진다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김준 고려대 사학과 초빙교수

인간은 요사한가. 물건이든 사람이든 필요하면 애지중지하다가 쓸모가 다하면 매정하게 버린다. 토사구팽(兎死狗烹)도 같은 말이다. 춘추 시대 말기 월왕(越王) 구천(勾踐)에게는 범려(范蠡)와 문종(文種)이라는 두 공신이 있었다. 그들은 구천을 도와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패업을 이루어 명성이 높았다. 그런데 어느 날 범려가 모습을 감추었다. 제(齊)나라에 은둔한 범려는 인편으로 문종에게 "새가 없어지면 활은 창고에 처박히고(蜚鳥盡, 良弓藏),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기게 되오(狡兎死, 走狗烹). 그대는 왜 월왕의 곁을 떠나지 않소"라는 편지를 보냈다. 명예와 지위에 연연했던 문종은 범려의 권고를 듣지 않았고 결국 월왕에게 자살을 강요받았다. 문종이 죽고 월나라도 기울기 시작했다.

송나라 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은 쿠데타로 황제가 되었으나, 그는 늘 자신을 추대했던 공신들에게 불안을 느꼈다. 어느 날 그는 술상을 차리고 그들을 불렀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송태조가 말했다. "그대들이 없었으면 나는 이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오. 그런데 지금 불안하기만 하오." 공신들이 이유를 물었다. "그대들이라고 왜 내 자리가 탐나지 않겠소"라고 했다.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驚惶罔措) 공신들에게 "그대들의 공은 영원히 잊지 않겠소. 후손까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해주겠으니 이제는 병권을 내려놓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했다. 이튿날 공신들은 병을 핑계로 앞다투어 사직했다. 술상에서 병권을 뺏는다는 배주석병권(盃酒釋兵權)의 이야기다. 송태조는 약속을 지켜 공신들을 원로로 대접했고 300년간 지속되는 송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조국 전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싸고 매우 시끄럽다. 그들이 검찰개혁의 희생자가 되어 토사구팽될지, 공을 세운 뒤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공성신퇴(功成身退)할지 궁금하다. 월나라는 기울었고 송나라는 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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