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세 시대] 최계호 "고희(古稀), 일·봉사 시작하기 좋은 때"

최 전 경북과학대학 총장 "자기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 만들어야."

최계호(71) 전 경북과학대학 총장이 빵과 과자를 굽고 있다. 최 총장은
최계호(71) 전 경북과학대학 총장이 빵과 과자를 굽고 있다. 최 총장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노년기에도 일을 할 수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고 봉사할 수 있다"면서 노년의 일을 위한 노력과 준비를 강조했다. 석민 선임기자

최계호(71) 전 경북과학대학 총장은 올해 2월 대구대 객원초빙교수(취업전략)를 마지막으로 50여 년 교육자의 길을 은퇴했다. 그러나 '은퇴'란 말은 그에게 적합하지 않다. 어느 누구 못지 않은 다이나믹한 삶을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흥미진진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항상 준비하고 노력하며 '봉사자로서의 삶'을 꿈꾸면서 실천하고자 했던 그였기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인 지는 모른다.

최 총장은 "과거의 사회적 지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건 그 때 내게 주어진 하나의 역할일 뿐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일을 할 수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고, 봉사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총장은 특히 "뒤늦게 정부의 부름(한국지역진흥재단 초대 이사장(차관급))을 받아 행정을 경험하면서 일이 무엇이고 일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다"면서 "일과 일자리는 정부에서 만들어 줄 수도 있지만, 시민들이 자기 스스로 자신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 바쁜 하루 하루, 내 일은 내가 만든다!

지난달 최 총장은 팔공산 동화지구 내 개인 소유 건물에 제빵 관련 풀 설비를 갖췄다. 교대로 도와주는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매주 1, 2회 정도 빵을 구워 대구지역 무료급식소 등에 공급하기 위해서다. 제빵사는 최 총장 자신이다. 봉사자들은 주변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준다. 팔공산 제빵소를 열기 위해 2년 전 제빵기능사 자격을 취득했고, 최근에는 위험물안전관리자격증과 소방안전관리자 자격증도 취득했다. 제빵소 운영과 관리를 직접함으로써 비용을 절약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직업학교에서 제과과정을 배우고 있다. 제빵은 제과와 결합할 때 비로소 제과·제빵으로 완성된다.

최 총장의 일·봉사 욕심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요양보호사교육원을 다니고 있다. 다음달 2일 예정된 '제29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합격을 자신(?)하고 있다. 그만큼 교육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최 총장은 이학박사이면서 명예신학박사이고 목사이기도 하다. 목사 안수는 2년 전인 2017년 받았다. 모태신앙으로 오랫동안 교회 장로로 활동했던 최 총장이 정식 신학 공부를 하게 된 계기는 은퇴 후 일·봉사와 관련이 깊다.

"일과 봉사로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노후설계의 핵심이었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 못지 않게 정신적인 안식과 평화를 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으면 일과 봉사의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야학으로 출발한 20대, 일·봉사로 마무리 하는 노후

봉사의 삶은 대학(영남대 수학과) 2학년 때 야학에서 출발했다. 당시 경북대 북문 근처 산격동에서 가정형편으로 중·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을 가르쳤다. 낮에는 구두닦이 등으로 일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야학을 찾은 아이들은 학구열이 강했지만 쏟아지는 잠을 참긴 어려웠다.

"최 선생님은 야학 아이들에게 호랑이로 통했습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면, 차라리 공부하다가 죽어라!'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많이 맞았죠. '이왕 한 번 죽을 거, 공부하다가 죽자' 이렇게 다짐하면서 공부했습니다."

최 총장의 제자로서 한 때 2군 부사령관을 지냈던 권태오 장군의 회고이다. 이렇게 최 총장은 20대부터 야학과 검정고시를 통해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천직이 교육자였다. 첫 직장인 성주여고(3년 근무)를 거쳐 왜관 순심고(9년 근무) 수학교사를 하면서 '입시의 귀재'로 명성을 날렸다. '최 선생이 담임을 맡으면 학생들이 자기 실력보다 한 단계 더 좋은 대학으로 진학한다'는 전설을 남겼다. 최 총장은 "그당시 입시 실적은 사실 수학적 통계를 바탕으로 학생의 적성과 능력·가정환경 등을 잘 고려한 과학적 지도 덕분"이라고 말했다.

대학으로 옮겨서도 독창적인 업적은 이어졌다. 신일전문대학(현 수성대학) 교수로 근무하며 교무처장을 10년 간 맡았고, 전국 전문대학 교무처장협의회 회장으로 '실업계 고교-전문대학 연계교육' 아이디어를 추진, 우리나라 실업계 교육의 기본틀을 바꾸었다. 또한 경북과학대학 총장,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행정안전부 한국지역진흥재단 초대 이사장, 대구대 객원 초빙교수를 지냈다. 한때 한국ITF 태권도 선수단장으로 호주 및 상트 페테르부르크 세계대회와 평양 기념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 총장은 "한 가지만 공부한다면 한 가지 직업을 구할 수 있을 지 몰라도 다양한 직업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미래사회에 대응하긴 어렵다. 다양한 일에 적응할 수 있는 잠재력과 일하는 연습·준비를 젊은 시절부터 해나가야 한다"면서 "노년기 건강관리 역시 젊은 시절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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