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귀병 앓는 아빠와 아들, 친구 하나 없는 산골에 무허가 주택 "한숨만 나와"

병희 씨가 하교한 준이를 안아주고있다. 그는
병희 씨가 하교한 준이를 안아주고있다. 그는 "농악 경진대회에서 특별상도 수상하고 반에서 5등안에 들만큼 영특한 아들에게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못해 항상 가슴이 무겁다"고 말했다. 이주형 기자.

학교에서 돌아온 준이(12·가명)가 아빠 김병희(가명·54)씨 품에 달려와 안겼다. 외진 산골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준이와 쌍둥이 동생(8)은 워낙 길이 멀고 험해 걸어서는 학교를 오갈 방도가 없다. 다행히 이런 사정을 딱하게 여긴 동네 할아버지가 매일 트럭으로 아이들의 통학길을 돕고 있는 상황이다.

자신도 희귀병을 앓고 있어 통증의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아빠는 그저 준이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밖에 해줄게 없다. 갈수록 생활고는 심해지고 있지만 병희 씨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 희귀 병치레하는 것도 닮은 부자

준이는 3년 전부터 목과 허리가 눈에 띄게 굽기 시작했다. 당초엔 척추측만증을 의심했지만 동네 병원을 아무리 전전해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서울의 한 대형병원까지 가서 아놀드-키아리 증후군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병은 소뇌 일부분이 돌출돼 뇌와 척수가 만나는 곳에 이상이 생기는 희귀질환이다. 척수액이 뇌로 가는 흐름을 방해해 뇌의 공간에 차게 되고 극심한 두통과, 어지러움, 평형감각 이상, 근육약화, 청력상실, 목 뒤틀림 등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준이는 2016년 뇌수술을 받은 뒤 매년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뇌에는 여전히 척수액이 차 있는 상태다. '머리가 너무 아파요'라는 말을 달고 사는 준이는 매일 아침마다 30분간 심한 기침을 반복하는 것이 일상이다. 기침도 이 병의 흔한 증상이지만 수술 외에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다.

준이가 사는 경북 구미에는 마땅한 치료기관도 없다. 그나마 자세 교정으로 소문이 난 지역 유명 헬스클럽 원장을 찾아가 주3회 운동과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전부다.

지난 2009년부터 무혈성 괴사증을 앓기 시작한 병희 씨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다리를 못 쓰게 됐다. 이 병은 혈액순환이 잘 안 돼 뼈 조직이 죽어가는 질환이지만 인공관절 수술비를 마련할 비용도 없고 간경화가 심해 수술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IMF 당시 사업이 부도가 나고 몇년간 노숙인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간이 많이 상해 병을 얻은 것 같다"고 한탄했다.

◆ 무허가 건축물에 친구 한 명 없는 동네

아빠와 아들이 모두 병치레를 하자 결국 생계에 뛰어든 것은 베트남에서 온 엄마다. 엄마는 인근 건설현장 식당에서 일을하고 매달 60만 원을 번다. 정부 보조금 90만 원을 더하면 온 가족의 한달 수입이 150만원 정도다. 당장 준이와 아빠의 수술비와 병원비가 들지 않더라도 아이 셋에 할머니까지 여섯 가족 먹고살기에는 빠듯하다.

특히 준이의 자세교정과 학원비에만 한 달 수입의 절반가량이 들어간다. 여기에 대해 엄마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성적이 크게 향상된 준이를 보고 없는 살림을 쥐어짜서라도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병희 씨는 " 자세교정 비용도 헬스장을 찾아 사정사정해서 깎은 금액이 35만원" 이라며 "공부방까지 보내는 것은 우리 형편에는 가당치도 않아서 아내와 다투기 일쑤인데, 자식을 향한 사랑은 어쩔수 없나보다"고 한숨을 쉬었다.

아빠는 아들이 친구 하나 없는 외진 산골에 사는 것이 마음 아프다. 또래 친구는커녕 이웃 주민이라고 해야 3명이 전부다. 병희 씨는 "지낼 곳이 없어 친척이 소유한 땅에 컨테이너 창고를 올려 정착했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불편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면서 "아내와 내가 둘 다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하게 살아 우리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정상적으로 키우고 싶었는데 이마저도 내게는 한낱 꿈일 수 밖에 없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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