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가 부끄러움이 아닌 자랑인 시대가 됐다. 천연구역이라 풀이한다.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을 손으로 떠다 마셔도 탈이 없다는 확신이다. 깨끗하다.
'특별천연구역 영양'이다. 오지는 미개발과 동격이다. 미개발은 '발품'과도 통한다. 자동차로 닿기 힘든 곳이 더러 있다. 철로와 고속도로가 없는 곳이다. 길이 있다 해도 구절양장이다. '여기가 우리나라인가, 지금이 2020년을 코앞에 둔 때인가' 의심하며 누리는 신세계다.
◆죽파리 자작나무숲
암과 싸우는 이들이 열광한다는 자작나무다. 쉬면서 몸을 낫게 하는 휴양의학의 대표적 숲길이다. 적당히 감상하고 탄성을 지를 만큼 모여 있는 수준이 아니다. 끝이 안 보인다. 입만 벌리고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새하얀 줄기가 한데 모이자 밝은 기운이 우러 나온다. 힐링이 따로 없다. 그저 자작나무숲 사이로 걷는다.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숲은 축구장 42개 크기의 넓이다. 자작나무숲의 대표격인 강원 인제 자작나무숲을 떠올리면 알맞다.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았다고 한다. 잡풀과 잡목이 제멋대로 어울려 자라있다.
청정 공간에서 자란 티가 난다. 굵기도 제법 실하고 키도 크다. 줄기 굵기가 운동선수 허벅지 두께다. 60cm는 거뜬히 넘어 보인다. 굵은 건 성인남성 몸통 이상이다. 1993년부터 30년 가까이 무럭무럭 자라온 결과다.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지도로 보니 영양과 울진의 경계지점이다. 검마산과 백암산 사이 어드메다. 찾아가는 게 조금 어렵다.

덜 걸어 접근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죽파리 산 39-2번지'를 내비게이션에 넣는다. 31번 국도, 국도라고 쓰지만 편도 1차로 도로다, 917번 지방도를 거쳐 군도로 옮겨 타고 임도에 오르는 대장정이다. 장파1교에서 '상죽파길'로 들어가는 길이다. '죽파리 산 39-2번지'가 나오지 않는다면 차선책으로 '장파경로당'을 입력해도 좋다. 어차피 장파경로당부터는 외길이다.
얼마 전까지는 자작나무숲 바로 아래까지도 갈 수 있었다. 최근 태풍이 심술을 부려 난관을 만들었다. 임도 일부가 유실됐다. 교행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주차할 곳이 나타나면 일부러라도 내려 걷는 걸 권한다. 3km 남짓 걷게 된다. 트래킹 난도도 매우 낮다. 1시간 정도의 삼림욕이다.
조금 걷다 보면 전화기가 불통이다. 제한서비스구역이다. 아직은 이렇다 할 안내판도 없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건 없다. 삼거리가 하나가 나와 갈림길을 알릴 뿐이다. 오로지 직진이다. 17km 떨어진 기산마을로 새기도 어렵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은 속칭 아는 사람만 안다는, 베일에 싸인 곳이다. 그러나 올해 7월 산림청은 이곳에 자작나무 숲길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2km 신규 조성을 시작으로 점차 주변 숲을 정비해 기존 검마산과 백암산 등산로, 신선계곡 탐방로 등을 연계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몇 년 기다리면 편하게들 다닐 수 있다는 얘기다.

자작나무 숲길이 험난하다 생각되면 일월면 대티골을 권한다. 가을색에 어울리는 명소다. 일월터널에서 연결되는 용화리 단풍골과 산림청이 선정한 아름다운 숲길, 엄밀히 말하자면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길 부문 '아름다운 어울림 상'을 받은, 옛 31번 국도는 가을에 명함을 내밀어도 좋을 곳이다. 옛 31번 국도길은 외씨버선길 '치유의 길' 구간 일부다.

겸사겸사 둘러보고 싶다면 일월자생화공원과 '용화광산 선광장'도 이색적인 볼거리다. 특히 석굴사원처럼 보이는 용화광산 선광장은 2006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수탈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은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나카가와(中川) 광업주식회사가 건설한 광물 선별장이다. 일월산에서 채굴한 광석을 이곳으로 옮겨 작업했다. 석굴처럼 보이는 모습 때문에 채굴터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밤이 새도록 보는 밤하늘
천지가 검은데 시선이 닿는 곳은 온통 환한 점이다. 어찌나 반짝이는지 처음엔 점들이 마중을 나온 줄 알았다. 밤하늘의 별이다. 과장하자면 별밭에 별을 캐러 들어갈 뻔했다. 얼마나 될까. 천문학계에서는 우주에 1천억 개의 은하가 있고, 은하마다 또 1천억 개의 별이 있다고 한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건 3천개 정도란다.

영양에서 울진으로 넘어가는 길도 막힌 동네다. 마을이 없다는 뜻이다. 한여름의 명소 수하계곡 가는 길이다. 반딧불이생태공원이 있는 '국제밤하늘보호공원'이다. 시골마을에 밤이 이르다고 해도, 오후 9시면 심야라는 농가에는 인공의 불빛이 없다.
이런 이색적인 풍경에 반한 단체가 있었으니 '국제밤하늘협회(IDA)'다. 별의 별 협회가 다 있다는 말이 딱 맞다. '불을 끄고, 별을 켜자'는 운동을 펼치는 이 민간단체는 밤하늘이 빛으로 오염되지 않은 곳을 찾아 보호공원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 일대 3.9㎢도 2015년 10월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했다.
전 세계에 76곳이 '국제밤하늘보호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대부분 미국이다. 아시아에선 대만과 일본(오키나와)에 한 곳씩 있다. 영양이 접근성 면에서 비교 우위에 있는 셈이다. 심지어 오키나와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통상 대기층이 안정되고 밤이 긴 겨울을 별 보기에 최적기라 한다. 정작 와 보면 계절 구분이 무의미한 걸 금세 안다. 풀벌레도 이따금 소리내는 정적과 암흑에 놓이면 누구라도 존재의 심연으로 파고 들어가기 마련이다. 암순응이 있다 해도 한계가 있다. 시각보다 후각과 촉각에 의존해야 하는 세계다.
그믐이면 자신의 몸에 달린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이다. 별이 무더기로 쏴주는 빛에 동지애와 위로를 넘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별빛은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잘 해주는 교회오빠를 두고 미래를 고민해선 곤란한 이유를 문득 깨닫는다. '저 별이 내 별이고, 그 옆의 별이 너의 별', '저 하늘의 별도 달도 (내 것이니) 따다 주겠다'는 감상과 용기 분출을 공약 남발로 고발해선 안 되는 이유도 자연스레 설명된다.
국제밤하늘보호공원에서는 별 관측이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는 '별빛 예보'를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된다. 어린이를 둔 가족단위라면 반딧불이천문대를 이용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별처럼 빛나는 보물들

영양의 보물로 '서석지(瑞石池)'를 빼놓을 수 없다. 동래 정씨 집성촌인 연당마을 서석지는 1613년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 정영방이 조성했다.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민간정원으로 꼽힌다.
가로 13m, 세로 11m, 평균 수심 1.5m의 작은 못을 가진 정원이다. 서석, 상서로운 돌이 못 안에 가득 하다. 돌마다 이름을 붙여 의미를 더했다. 돌뿐 아니라 각 공간마다 이름을 붙이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작은 우주로 만들었다. 연꽃이 만개한 여름이 제철이다. 가을에는 은행나무 열매를 조심해야 한다.

서석지와 가까운 곳에 선바위와 남이포가 있다. 선바위와 남이포 전설은 영양에 왔다면 한 번 쯤 듣는 얘기다. 선바위가 있어 지명도 입암인 이곳에는 삼각기둥 뱃머리처럼 우람한 암벽이 있는데, 처음 보는 이들은 이걸 선바위로 오인하곤 한다.
반변천과 합류하는 물길 지점을 남이포라 부른다. 영양을 거쳐 안동으로 흘러 낙동강을 이루는 반변천은 이곳에서도 절경의 주연이다.
절경 앞에서 남이 장군 전설이 시작된다.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조선 세조 때 실존인물인 남이 장군이 무협지에 실릴 만한 활약, 고공비행과 현란한 칼춤 등의 무공으로 남이포에서 도둑떼 우두머리를 박멸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그는 26세의 나이로 함길도(지금의 함경북도)에서 있은 이시애의 난(1467년, 세조 13년)을 진압한 공신이었다. 27세 때 병조판서에 오를 만큼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이내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이 왕권 강화를 노리고 즉위 직후 남이 장군을 대역죄인으로 만든다. 모반을 꾀했다는 고변을 빌미삼아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공신들을 대거 숙청한 것이었다. 충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건 백성이 먼저 알았다. 이야기로 그를 살려냈고 영웅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야기는 문향(文鄕) 영양과 뗄레야 뗄 수 없다. 전국에 내놔도 자랑할 만한 문학가들의 고향이다. 조지훈의 주실마을, 오일도의 감천마을, 이문열의 두들마을이 북에서 남으로 차례대로 있다. 아무렴, 천연의 밤하늘을 수시로 접하고 벗 삼는 곳은 감성 폭발지점과 동일선상에 있다. 경북 북부의 이육사문학관(안동 도산), 객주문학관(청송 진보), 권정생동화나라(안동 일직)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산나물도 한 입
영양은 산나물의 본향이다. 읍내 식당에서도 밑반찬으로 산나물무침이 나온다. 개중에 '어수리나물'을 눈여겨봐야 한다. 몸에 좋은 한약 재료를 무쳐놓은 건가 싶게 독특한 향이다. 실제로 무기질, 섬유질, 비타민이 풍부해 약재로 널리 쓰인다.

향이 강한 것에는 거부감이 들 만한데 스태미나에 좋은 것으로 동의보감에 실렸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영양에 몇 번 와본 이들은 이 반찬을 남기지 않는다. 실제 동의보감에는 피를 맑게 해 중풍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쓰여 있다. 통상 한의학에서 향이 강한 약초는 소염 작용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류한다. 소염 작용은 곧 항암효과로 연결된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어수리나물'은 주로 봄철 어린 순을 나물로 먹지만 가을에도 특유의 향을 머금고 있다. 수라상에 올라 '어수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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