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나쁜 정치가는 어떻게 세상을 망치는가/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강희영 옮김/ 바오 펴냄

조제프 푸셰는 1793년 프랑스혁명 광장에서 루이 16세를 길로틴으로 처형했다(파리 카르나발레 미술관 소장). 출처 구글
조제프 푸셰는 1793년 프랑스혁명 광장에서 루이 16세를 길로틴으로 처형했다(파리 카르나발레 미술관 소장). 출처 구글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다. 역사는 오직 승리자만 응시하며 패배자들을 어둠 속에 남겨둔다. 근대 민주주의 서막을 알린 프랑스 혁명사의 주인공들, 즉 로베스피에르, 당통,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등은 역사의 굵은 활자로 기록돼 있다. 당대 유럽을 지배했던 나폴레옹과 수많은 장군들의 무용담은 신화가 되어 지금도 전해진다. 그러나 역사는 왕과 영웅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면에는 실제 주인공들이 숨어 있다.

이 책은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에 보내고, 나폴레옹을 붕괴시키며 오로지 권력만을 향해 나아갔던 흑막의 정치가 조제프 푸셰의 생애를 추적해 그의 심리세계와 각 인물간의 갈등구조를 생동감 있는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조제프 푸셰는 누구인가

"1790년에는 수도원의 교사였고, 불과 2년 후인 1792년에는 교회의 겁탈자가 되었고, 1793년에는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그로부터 5년 후에는 백만장자가, 그리고 10년 후에는 오트란토 공작, 그리고 마침내 임시내각의 수반으로 권력의 1인자가 되었다."

푸셰의 파란만장한 삶이다. 푸셰는 1759년 프랑스 낭트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나 1820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숨을 거두었다. 60여 년에 걸친 그의 생애는 프랑스혁명과 그에 뒤이은 루이 16세의 처형, 자코뱅의 공포정치, 나폴레옹의 등장과 유럽전쟁, 그리고 나폴레옹의 백일천하와 왕정복고라는 격동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 그런 시대에 푸셰는 세기 전환의 한복판에서 모든 당파를 이끌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단 한명의 남자였다. 그가 충성했던 단 하나의 대상은 권력이었다. 그는 권력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근대의 가장 완벽한 마키아벨리스트였다.

◆푸셰는 기회주의자의 화신

푸셰는 죽는 순간까지 권력을 추구한 처세의 달인이자 기회주의자 중의 기회주의자였다. 이념과 상관없이 언제나 다수당을 선택했고, 혼란의 시기에는 승자가 확연히 드러날 때까지 숨죽이며 기다렸다. 그는 인류 역사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변절과 배신의 귀재였다. 혁명가들이 대세를 장악할 때는 공산주의가 되었다가, 반동 쿠데타가 일어나면 손바닥 뒤집듯 혁명을 좌절시켰다. 그는 의형제를 맺었던 로베스피에르를 단두대에 세웠으며, 자신을 출세시킨 바라스를 권좌에서 추출했다. 또 리옹 학살의 책임을 동료에게 떠넘겼으며, 충성을 맹세했던 나폴레옹의 배후를 위협하며 그의 권력을 붕괴시켰다. 심지어 그는 임시내각의 수반이 된 뒤에는 루이 18세에게 권력을 팔아넘기기까지 했다. 그에게는 어떤 숭고한 가치나 이념도 없이 오로지 맹목적인 생존의지와 권력의지밖에 없었다. 루이 18세는 "푸셰처럼 교활하고 약삭빠른 놈은 이 세상에 다시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푸셰는 최초의 정보기관장

푸셰보다 정보의 힘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테르미도르 쿠데타 후 총재정부에서 처음 경무대신이 되었고, 이후 나폴레옹과 루이 18세 치하에서도 그 직위를 맡았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을 발탁한 정부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정보를 활용했다. 프랑스 전역에 거미줄처럼 깔아놓은 스파이망을 통해 모든 것을 엿듣고 감시했으며, 권력자들의 뒤를 캐내 약점을 틀어쥐었다. 그의 촉수가 뻗치지 않는 곳은 없었으며, 정적인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마저도 그에게 정보를 팔아넘겼다. 모두가 푸셰에게 고개를 숙였고, 나폴레옹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푸셰를 가장 두려워했다. 이는 푸셰가 당대에 가장 막강했던 권력자인 나폴레옹과의 목숨을 건 권력투쟁에서 끝내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푸셰를 근대사회에서 최초로 정보의 힘을 이용해 권력의 정점에 오른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푸셰의 후예?

정치가 푸셰의 삶은 우리에게 정치의 본질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 권력만이 충성의 대상이었던 푸셰의 정치에 국민은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푸셰 같은 정치가의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를 따라 우리는 걸어온 것이 아닌가. 때로 그들이 지옥을 향할지라도 우리는 천국으로 간다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정치무대를 장식하는 정치가들의 삶에서 푸셰를 읽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언제나 권력의 중심에서 맴돌던 정치가, 음습한 공작정치를 획책했던 정치가, 변절과 배반을 일삼았던 정치가, 매일 언론에 등장해서 입버릇처럼 국민을 내세우는 정치가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푸셰의 얼굴을 본다. 과거에 토했던 무수한 말들을 배반하고, 인기에 영합하고, 명백한 실책과 잘못을 바로잡기보다는 천박한 진영논리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나쁜 정치가들을 보고 있다. 그런 정치가를 준엄하게 심판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모두 푸셰의 후예일 뿐이다. 388쪽 1만5천원.

▷지은이 슈테판 츠바이크=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부유한 유대계 방직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수학 후 1904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차 대전 기간에는 반전운동에 참여했다. 소설가이자 희곡 작가, 전기 작가로서 생동감 있는 문체와 섬세한 감정 묘사, 뛰어난 구성 능력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저서로는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발자크' '광기와 우연의 역사' '어제의 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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