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시월단상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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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상대의 행위를 욕했지만
지금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
대의민주주의 보완 기능 있다며
대통령 권한을 광장에 던져버려

우린 그렇게 컸다. '어떤 사람이 될까?'는 상상했어도 '어떤 나라를 만들까?'는 꿈꿔 보지 않았다. 그런 건 대통령의 일이었고 국민이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제1차부터 2차, 3차까지 연이어 성공시킨 나라, 10월 유신으로 장밋빛 미래를 약속받은 나라, 어디에도 우리처럼 승승장구하는 나라는 없었다. 우린 위대한 나라에 살고 있었고 그건 오로지 뛰어난 대통령의 특출한 영도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만에 하나, 그것이 우리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이거나 이웃집 누나가 공장에서 쏟은 땀과 눈물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건 꿈에도 하지 않았다. 아무쪼록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고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 그게 국민이 할 일이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주어진 삶의 지표는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가 부르면 언제든 나아가 싸우고, 싸우면 이기는 어른이 되어야 했다. 학교에선 그런 각오를 담아 시시로 노래도 불렀다. "우리들은 대한 건아 늠름하고 용감하다.(중략) 이기자, 이기자, 이겨야 한다."

대통령의 말과 나라의 정책은 언제나 옳기에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이기자 대한 건아'를 목청껏 부르게 한 힘도, 길고 어려웠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게 만든 열의도 그런 믿음에서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 같은 가을 이달에 그토록 믿고 따랐던 대통령이 갑자기 떠났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둑길 위에서 아이들은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글썽였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이대로만 가면 곧 우린 최고(선진국)가 되는데, 애타는 마음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땐 몰랐다. 백억불 아니라 천억불 수출을 달성한다 해도, 암만 고속도로를 닦고 국산 자동차를 만들어낸다 해도 그런 것만으론 선진국 되기가 어렵다는 건 알 길이 없었다.

민주주의가 없으면 다양성이 없고 다양성이 없으면 문화가 쇠락한다는 것, 그러므로 선진국이 되려면 민주주의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것, 그런 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일찍이 김구 선생이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준다"고 역설했음에도 말이다.

내 삶의 방식을 결정할 권리가 나에게 있다는 것,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주인은 그 나라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권리는 어디서 나오고 또 행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둑길 위의 아이들 누구도 배워보지 못했다.

차차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의 꿈도 조금씩 변해 갔다. '나라를 위해 무엇이 될 것인가'에서 '나라에서 무엇이 될 것인가'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름과 공존의 가치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어른, 더 나은 내가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은 꿈 꿔본 적 없는 어른들이 자꾸자꾸 생겨났다.

저 '높은 자리'에 오르기까지 세상은커녕 타인의 삶에는 아무 관심조차 없던 자들이 그 자리를 발판 삼아 국민을 위한다며 금배지를 달았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건지 고민해본 적이 없으니 국민에게 내놓을 철학도 비전도 딱히 없다. 잘하는 거라곤 싸움질하거나 싸움을 부추기는 것뿐이다. 그 옛날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로 기초를 닦아서 그런지 대체로 그건 잘한다.

한동안 3김 시대가 끝나야 우리 정치가, 역사가,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거라고들 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YS도 가고 대통령 각하를 대통령님으로 바꾼 DJ도 가고 기자들에게 '몽니'란 단어를 선사한 JP도 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더 나아졌는가?

대통령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기능이 있다며 자신이 위임받은 권한을 증오와 혐오로 가득한 광장에 던져버렸다. 권력의 언저리엔 얄팍한 자들이 자기들 먹을 것만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시절 윗사람의 눈치만 살피던 이들은 이제 서로 자기가 대장이 되겠다며 저열하게 다툰다.

예전엔 그래도 상대의 행위를 비난하고 욕했지 지금처럼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저주하고 증오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그래도 서로가 그리는 나라, 꿈꾸던 세상이 달라서 싸웠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나라는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끄떡없는 철옹성이 아니다. 대통령은 책임져야 하고 주권자인 국민은 더 늦기 전에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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