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동그란 길로 가다?

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박노해 시인의 '동그란 길로 가다'란 시의 전문이다. 조국이라는 특별한 사람이 66일 만에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내려오던 날, 그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이다. 이 시는 조국 전 장관이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한 문재인 후보를 격려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남긴 것이기도 하다. 이번엔 아내를 통해 자신에게 돌아온 셈이다.

정 교수는 시의 인용에 앞서 '그대에게,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라는 문구를 적었다. 자신과 남편 그리고 가족들의 심경을 토로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핍박받는 정의의 사도임을 자부하는 것이다. 세상이 곡해하는 민주 투사임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자존을 버리지 않겠다는 공언이다. 좌파 민중주의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다.

이 시는 반야심경의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이란 명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인생무상을 체득한 달관의 경지를 느낄 수도 있다. 삶의 행복이 특별함과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에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편법과 반칙, 궤변과 요설, 오만과 위선이란 단어들이 떠오르는 그들의 후안무치한 삶의 궤적을 이 시와 어떻게 연계해야 할지 곤혹스럽다.

그들에게 '유장한 능선'은 무엇이었으며, 그들이 지향한 '동그란 길'은 과연 어떤 길이었을까. 그들에게 담대함은 무엇이며, 인간의 위엄이란 어떤 개념인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특별하고 거짓된' 그들의 삶과 '동그란 길'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시(詩)의 차용도 '조로남불'인가. 아니면 문학적인 나르시시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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