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여대생 두 명의 대화를 의지와 상관없이 듣게 된 것은 목소리가 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독특한 웃음소리와 자극적인 단어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대화내용은 최근에 소개받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너 정도 만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조건은 나쁘지 않다", "차는 뭐야?" 돈과 조건을 따지며 부러워하는 한 여자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수단이 되어 자신을 상품화하는 또 다른 여자에게 책 한권을 소개 시켜주고 싶다.
'위대한 개츠비'(저자: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준수한 연기력이 돋보였던 영화도 좋았지만 나는 소설이 더 재미있었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은 닉의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주변 환경과 인물에 대한 은유와 묘사는 독자가 상상할 필요도 없이 단번에 눈앞에 펼쳐진다. 특히 처음으로 톰의 집에 방문하여 데이지와 베이커를 만날 때 방안의 몽환적인 분위기 묘사는 나를 그곳의 커튼처럼 펄럭이게 만들었다. 간략한 줄거리는 개츠비의 옛사랑 데이지를 향한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미 지역의 재력가와 결혼한 데이지를 되찾으려 노력하는 개츠비의 사랑이 어리석고 답답하게 보이는 것은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개츠비는 밤마다 만을 사이에 두고 있는 데이지의 집을 향해 선다. 부두의 경계를 알리는 초록불빛을 향해 뻗은 두 팔은 가질 수 없는 사랑을 암시한다. 그 초록불빛은 개츠비의 저택에서 밤마다 열리는 파티의 형형색색의 조명과 닮아있다. 재력을 과시하는 화려한 조명을 따라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의 말로와 재력으로 사랑을 되찾으려는 개츠비의 말로는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대륙을 향한 콜럼버스의 열망과도 닿아있을지도 모른다. 그 물길은 아메리칸드림의 지도를 그려줬을 테니까.
이 이야기를 흔한 러브스토리라고만 보고 싶지 않다. 물질주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발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숨 쉬고 있다. 저자 피츠제럴드는 실제 자신의 재력 때문에 파혼을 겪기도 했다. 롤리(John Henry Raleigh)는 "피츠제럴드의 개츠비가 미국 역사의 아이러니와 '미국이 꿈'의 타락을 나타낸다" 라고 했다. 비단 미국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형형색색의 자동차들이 도로를 누빌 것이다. 도대체 남녀가 사랑하는데 차종이 무슨 연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만이 위대한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직은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한'이 비아냥이나 반어적 표현이 아니기에, 아직은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에서 괴물이 부정적인 의미라면 말이다. 김현규 극단 헛짓 대표,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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