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세계적으로 금관과 금동관을 많이 만든 나라다. 흔히 신라 금관만 널리 알려져 있는데, 백제나 고구려, 가야는 금관 문화가 없을까. 신라 금관이 세계 최고 수준일까. 금관은 왕이 쓴 왕관일까. 여성은 금관을 쓰지 않았을까. 지은이는 금관에 대해 품을 수 있는 궁금증 21가지 질문으로 요약해 답을 풀어주고 있다. 금관이 출토됐거나 금관을 소장하고 있는 23개국 80개 박물관을 직접 찾아 금관의 흔적을 더듬었다.

◆신라 금(동)관은 왕을 위해 만든 것인가?
프랑스 파리의 기메박물관에는 한국 유물 가운데 3단 '출(出)'자 나뭇가지 형태와 사슴뿔 세움 장식을 단 유물이 있다. 형태는 신라 금관이지만 청동으로 만들어 금을 도금한 금동관이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대구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등지에도 3단 '출(出)'자 형태와 사슴뿔 세움 장식을 단 금동관을 만난다. 금동관을 통해 신라의 영역확대 과정이 자연스럽게 읽힌다.

신라 금관의 수수께끼는 1000년 신라 역사에서 오직 5~6세기 경 경주에 초대형 봉분 무덤, 그것도 목곽을 쓰며 돌을 쌓아 만든 적석목곽분 시기에만 등장한다. 경주에서는 '출(出)'자형 나뭇가지와 사슴뿔을 넣은 금관, 경주를 벗어나 경상도와 나머지 신라 영역에서는 같은 형태의 금동관이 나온다. 수도의 금관과 지역의 금동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방에는 왕이 살았을 리 없으니 금동관은 왕이 쓰거나 왕의 부장품으로 무덤에 넣은 왕권 상징이 아니다. 지방의 금동관은 지방통치를 맡은 왕족이나 귀족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금관이나 금동관은 왕이나 왕족, 귀족의 권위를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지 왕에게 국한된 권위는 아니다.

◆몽골초원 선비족도 사슴뿔 금관 장식?
중국 북경의 천안문광장에 있는 국가박물관은 동아시아 문화의 정수를 담은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한나라가 무너진 뒤 위진남북조시대 황하 유역을 장악했던 선비족 유물이 전시돼 있다. 선비족이 내몽골 북쪽 지역 포두시 서하자촌 무덤에 남긴 2개의 관모 금관은 모두 사슴머리다. 뿔만 넣은 신라 금관과 달리 사슴얼굴과 뿔을 나뭇가지와 함게 담았다. 사슴얼굴에는 에메랄드 보석을 박고 풀 위 나뭇가지에 잎사귀 형태 금달개를 여럿 달았다. 나뭇가지 초화형, 사슴뿔 모티브가 신라 금관과 겹친다.
선비족은 95년 연맹형태로 국가를 만들고 점차 힘을 키워 북만주에서 몽골초원, 중원, 서역에 이르는 대제국을 유지한다. 1세기에서 6세기까지 동아시아 최강대국 위세를 떨치며 각국 문화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기마민족 특유의 황금문화를 발전시켰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관모 금장식이다. 금장식 핵심소재가 사슴뿔과 나뭇가지다. 이런 문화는 고구려에 전달되고, 고구려에서 신라와 가야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 선비족 일파가 고구려를 거쳐 직접 한반도 남부로 내려와 가야나 신라의 황금문화를 일군 지배세력이 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스 여성은 금관, 남성은 투구인가?
그리스 펠라박물관에는 주변 마케도니아 유적지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중이다. 마케도니아는 필리포스 2세 때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스파르타를 제외한 나머지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누르고 군사정치적인 우위를 확보한다. 마케도니아 무덤출토 유물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남자들 무덤에서는 투구와 방패, 칼 같은 무기류가 출토된다. 일부 황금 유물도 있지만 주력은 어디까지나 무기류다. 사후세계에서도 군사적 무용을 강조할 만큼 마케도니아의 특징은 군사력이다.
반면 여성무덤은 성격이 판이하다. 기원전 550년에서 기원전 540년 사이 만들어진 여성무덤에서 유골 머리 부분에 금관을 쓰고 있다. 원형 테에 꽃무늬 장식을 붙인 금관이다. 마케도니아 왕실이나 귀족사회에서 여성의 경우 금관을 주된 부장품으로 넣은 점이 엿보인다. 금관이 권력이라기보다 상위계급이라는 권위, 혹은 부의 상징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박물관에는 폼페이에서 출토된 로마 프레스코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라는 작품이 있다.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머리엔 금관을, 건장한 체격의 아레스의 머리에는 금빛의 투구를 쓰고 있다.

◆흑해 불가리아 인류사 최초의 금관?
지중해와 흑해 연안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환경의 해안을 들라면 단연 바르나를 꼽는다. 바르나는 16세기 이후 오스만 터키가 흑해에서 운영하는 가장 큰 항구도시며 지금까지 지구촌에서 발굴된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황금유물의 도시다.
바르나 고고학박물관 내부는 금빛으로 번쩍인다. 1972년 바르나에서 우연히 선사시대 공동묘지가 발견됐다. 조사결과 기원전 4600년에서 기원전 4200년 사이 무덤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70% 가량을 발굴해 모두 294기의 무덤을 찾아냈다. 특히 43번 무덤에서는 머리의 관모장식부터 황금 손잡이 도끼,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 황금부장품이 쏟아졌다.
석기만 쓰던 인류가 기원전 5000년대 처음으로 금속을 사용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고고학계의 결론이다. 43번 무덤에서는 동그란 형태의 머리 금장식이 나왔다. 2번과 3번 무덤에서는 이마에 직접 착용한 초기 형태 금관이 나왔다.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금관이다. 이런 기원전 4500년경 흑해에서 시작된 금관은 동서남북으로 퍼진다. 기마민족 스키타이가 흑해연안에서 유라시아 초원지대로 전파한 금관은 중앙아시아, 몽골초원,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들어왔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432쪽 1만9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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