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원도심 일대 대규모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이 봇물을 이루면서 철거·이주 관련 원주민·세입자·건물주·개발업자 간 크고 작은 갈등이 숙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규제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중된 탓에 대구지역 개발사업은 활황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철거·이주에 오갈 곳 없는 서민들
기초수급자 A(67·서구) 씨 부부는 최근 8년간 살던 집을 잃고 천막생활 중이다. 집이 재개발 부지 안에 포함돼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나 앉게 됐다. B(56·서구) 씨는 최근 살고 있던 집이 강제철거에 당할 위기에 처하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방화를 시도했다가 경찰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주택정비사업 탓에 이주철거 마찰이 끊이지 않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거 생존권 보장을 촉구한 반빈곤네트워크·주거권실현대구연합 등 대구지역 11개 시민사회단체는 28일 대구시의회에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현재 대구에서 추진 중인 주택정비사업은 모두 228건으로 지난 2017년 213건에서 소폭 상승에 그쳤지만, 관리처분인가 현황은 지난 2017년 11건에서 올해 28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관리처분인가계획은 사업지 내 토지나 건축물을 정리해 지주가 보유한 지분의 크기만큼 아파트를 배분하는 절차를 말한다. 정비사업의 마무리 단계인 관리처분인가계획이 끝나면 곧바로 이주 및 철거가 진행되는 탓에 관리처분계획 증가는 주거지에서 내쫓길 위기에 놓인 주민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대구시 관계자는 "관리처분은 사실상 재개발·재건축 진행의 정점으로 대구에서 이 정도 원도심 정비사업이 몰리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원도심 개발에 민원도 폭증
사업지는 대부분 원도심 지역으로 2017년 대비 대폭 늘어난 곳 역시 단독·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지역이었다. 특히 대구 남구는 2017년 3곳에서 올해 5곳, 서구는 0곳에서 6곳, 동구는 1곳에서 7곳으로 대폭 증가했다.
현재 대구 주택정비사업 진행·예정지 중 관리처분인가가 끝난 곳은 ▷중구 4곳(달성동, 동인 3가동, 대봉동, 남산동) ▷동구 7곳(효목동, 신암동, 신천4동) ▷서구 6곳(원대 3가동, 평리동) ▷남구 5곳(대명동, 이천동, 봉덕동) ▷북구 1곳(노원 2가동) ▷수성구 3곳(지산동, 파동) ▷달서구 2곳(두류동, 송현동) 등 모두 28곳이다.
이중 재개발 사업은 16건(98만1천689㎡), 재건축 사업은 12건(47만6천207㎡)으로 개발 면적(145만7천896㎡)만 수성못(21만8천182㎡) 7개가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활황을 띄고 있는 개발사업에 인근 주민들의 각종 불편 민원도 속출하고 있다. C(48) 씨는 지난달 "집앞 아파트 건설 때문에 새벽부터 공사소음·진동·비산먼지에 시달린다"며 여러 차례 중구청에 민원을 넣었다. 북구의 한 신축공사장 근처 어린이집 교사는 "공사 소음 탓에 목소리를 높이다 보니 성대치료까지 받아야 할 정도"라며 "원아들도 부쩍 불안해하고 자주 운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이처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도 원도심 개발이 집중되는 것은 대구 신규 택지 공급이 포화상태인데다 최근 몇 년 새 집값이 크게 오른 영향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장기 침체를 겪은 대구 부동산 경기가 최근 6년 동안 안정되고 분양가가 급상승하면서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데다, 대구는 지난 2009년을 끝으로 신규 택지 지정이 없어 원도심 주택정비가 건설붐을 견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거안정 위한 법적 장치 절실
앞으로 내쫓기는 세입자들은 더 많아질 상황이지만 아직 이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법적 장치는 태부족이다. 재건축 임대주택 의무공급과 재개발 사업 임대공급 비율을 늘리는 내용이 골자인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발의됐으나 여전히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세입자 주거안정을 토지주나 개발업자 등 민간에 떠넘긴다면 다양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성용 대구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익성에 민감한 주택정비사업 특성상 세입자 이주 철거 보상이 토지주와 개발업자들에게 전가되면 결국 개발 중단, 각종 편법 발생 등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가 나서서 지원책이나 제도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대구보다 일찍 대규모 정비사업에 따른 강제철거 문제를 겪어온 서울의 경우 2012년부터 강제철거 예방과 세입자 권리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뉴타운 재개발 수습방안을 시작으로 주거재생지원센터·인권지킴이단을 운영하고 정비구역 지정요건 강화, 세입자 보호협의체 구성 등 관련 조례를 강화해 온 것.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보상의 개념이 아니라 세입자나 원주민이 개발사업 전과 유사한 권리를 보장하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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