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철새의 방정식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한국 정치인에 대한 비유로 가장 적확한 용어를 꼽자면 바로 '철새'다. 옮겨다녀야 생존할 수 있는 '진짜 철새'에게는 실례의 말이지만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는 뒷전이고 자기 이해에만 골몰하는 '사람 철새'에게는 딱 어울리는 말이다. 그들의 속물 근성과 경박함은 유권자를 배신하고 우리 정치 풍토를 어지럽힌다는 점에서 적폐 그 자체다.

이합집산이 정치의 원초적 생리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와 정치 발전이 전제되지 않은 자리 다툼은 개인 욕심의 결과라는 점에서 배격의 대상이다. 게다가 공익이 아니라 자신의 유불리만 따져 처신하는 이에게는 '민생 정치'라는 말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총선이 6개월이 채 남지 않자 벌써부터 '철새'가 정치판에 출몰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조국 사태가 일단락되면서 기세가 오른 자유한국당 주변에서 두드러지는 기상도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지레 총선 가능성을 비관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던 몇몇 의원들이 최근 이를 번복하자 나오는 비판이다. 날이 추워지자 남쪽으로 떠나려던 철새가 생각을 바꿔 둥지를 꿰차고 버티겠다는 소리다.

최근 대구경북 자유한국당 다선 의원들의 공천 배제 가능성을 묻는 기자 질문에 중진 의원들이 역정을 내며 물갈이설을 일축했다는 보도도 마찬가지다. "공천은 상대가 있는 고도의 정치행위"라거나 "때 되면 나오는 레퍼토리" 등으로 말을 돌리며 인물 교체 바람을 비껴가려는 것인데 유권자에게는 유쾌하지 않은 변명이다. 그들 말대로 베테랑 없이 이길 확률이 떨어지는 건 맞지만 무능한 베테랑만 많아서는 패전 확률이 더 높다.

반면 여당은 초선 의원까지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고 나서는 마당이다. "당 지도부의 무능 때문에 정치의 열정과 희망을 잃었다"(이철희) "국회가 정쟁에 매몰돼 민생을 외면하고 본분을 망각했다"(표창원)는 게 불출마 선언 배경이다.

국회의원의 신분이 더 이상 국가 발전과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이 서면 스스로 떠나는 게 유권자에 대한 바른 도리다. 자리 욕심만 내는 정치인과 그런 정치인이 많은 정당은 고인 물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철새에게는 계속 먹이를 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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