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백년설이 부른 '번지 없는 주막'의 첫 부분이다. 이 노래는 비가 추적거리는 밤, 왠지 한잔 술이 생각날 때 부르면 어울린다. 친한 친구들과 허름한 술집에 앉아서 부르기 딱 좋은 노래인가 하면, 애처롭고 비극적인 정서가 잔잔히 가슴에 스며드는 노래기도 하다. 술집의 풍속도가 많이 바뀌었지만.
문패에는 이름과 주소를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지번을 부여하는 제도가 없었다. 주소를 숫자로 표시할 수 없었고, 문패가 절실하게 필요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농촌은 씨족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어 살았기에 이름이나 택호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도시에 살아도 동장이나 반장에게 물으면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그뿐이랴. 우편배달부는 이름만 대면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꿰고 있었다.
그러나 높은 벼슬을 하였거나 충절을 지킨 사람들은 달랐다. 솟을 대문에다 나라에서 내린 표창 내용을 내걸었다. 이것이 문패의 기원인데, 문패란 말은 홍문(紅門)과 패액(牌額)의 준말이다. 홍은 충신․효자․열녀의 일편단심 붉은 마음을 뜻하고, 문은 그런 사람이 나온 가문이나 문벌을 뜻한다. 넓게는 그가 사는 마을이나 고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편제도가 발달하고 편지의 내왕이 빈번해졌다. 아울러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람을 찾거나 우편물을 배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문패가 꼭 있어야 할 필수품이 되었다. 집집마다 문패를 달도록 하는 법이 시행되었고, 그와 함께 문패달기운동까지 벌인 적이 있다.
문패는 일반적으로 나무로 만든다. 장방형의 육면체 나무에다 주소와 성명을 새기는데, 돌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자개를 박아서 만드는 사람도, 대리석으로 만드는 사람도, 더러는 서각(書刻)을 해서 멋을 내는 사람도, 아크릴판에 새기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국가유공자의 집' '병역명문가의 집' 같은 특이한 문패가 있고, 집들이를 축하하며 문패를 선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뿐이랴. 세대주의 이름만 쓰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부의 이름을 함께 쓰는 경우도 있다.
처음으로 내 집을 짓고 나서 뿌듯한 마음으로 문패를 달았다. 보기에도 좋았을 뿐 아니라 흐뭇하였다. 자개로 된 문패를 가끔 광택을 내는 약품으로 닦기도 하였다. 그 뒤 몇 차례의 이사를 하였고, 그럴 때마다 문패를 소중하게 간수하였다. 그러다가 거처를 아파트로 옮겼다. 문패를 달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하였다. 건물 입구에 달아 놓을 수도 없고, 현관에 다는 것도 마뜩찮아서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뜻을 접고 말았다. 끝장에는 깨끗하게 닦아서 서가 한쪽에 세워놓았다. 내 이름 석 자를 내다 걸 데가 없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아, 사람살이가 이래서야.

김 종 욱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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