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바람, 찬바람이다. 옷을 바꿔 입는다. 오래 묵었던 코트가 바깥 구경을 한다. 가로수도 옷을 갈아입었다. 온통 붉고, 샛노랗다. 눈 호강을 위해 슬골 마모도 감수한다는, 가을과 겨울 사이 계절, '단풍철'이다.
정말이지 한철이다. 보름 남짓이다. 절정기는 더욱 잠깐이다. 적당한 때만 견주고 있기엔 너무도 짧다. '내가 가는 단풍명소마다 미어터지는' 이유다.
어머니의 숫자만큼 고향의 맛이 있는 것처럼 단풍명소도 천차만별이다. 물들어가는 단풍에는 옛 기억이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단풍에 꽂힌 시선은 과거를 훑는다.
단지 단풍만 즐기고 싶다면 대구도심 속 명소도 괜찮다. 대구시내에서 무릎 관절 걱정 덜고, 입장료 부담 적은 효자 구간으로 엄선했다. 대구도시철도로 쉽게 갈 수 있다. 가까이 있어서 소중한 걸 몰랐던 곳이다. 대구에 볼 게 없다, 갈 곳이 없다는 말은 이제 겸양이 아니다.
경북은 관광 담당자들이 추천한 곳이다. 10월의 마지막 날은 단풍을 즐기며 걷기 좋은 날이다. 지금이 절정이다.
◆대구도시철도로 즐기는 단풍명소 7선
①1호선 중앙로역

경상감영공원에는 적잖은 대만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화려한 단풍을 경험하지 못한 대만인들에게 대구의 가을과 경상감영공원은 별세계다. 특히 비오는 날 짙어진 단풍은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스튜디오 무대의 현장판이다. 공원과 붙어있는 근대역사박물관 창문을 통해 내다보는 단풍 무리는 액자 속 그림에 진배없다.
②1호선 서부정류장역, 2호선 두류역

두류공원, 더 말할 게 없다. 대구도심의 열린 공간으로 단풍철에도 제 몫을 한다. 1호선 서부정류장역에 내리면 성당못을 거쳐 대구문화예술회관을 감상하는 풍경을 얻고, 2호선 두류역에서 내리면 이국적인 분위기의 이월드를 거쳐 코오롱야외음악당을 넘어간다. 어디든 흠잡을 데 없는 단풍 나들이 코스다.
③1호선 아양교역, 동촌역

대구 대표 유원지 중 하나인 화원유원지가 사문진나루터로 재탄생했듯 동촌유원지도 옛날 출렁다리와 오리배만 있던 동촌유원지가 아니다. 연분홍 꽃잎으로 상춘객을 유혹하던 금호강 벚나무길은 진한 주황빛 옷으로 갈아입었다. 밤이 내려 앉을라치면 잔양을 덮어쓴 아양철로 야경이 가로등과 합세해 금호강 풍광을 북돋운다.
④2호선 계명대역, 강창역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과 드라마 연출자들이 '페르소나급 촬영지'라 할 만큼 습관처럼 찾은 곳이다. 캠퍼스 안 한옥마을 '계명한학촌'을 비롯해 유럽풍의 아담스 채플로 이어지는 공간도 어엿한 조연 역할을 했다. 성서캠퍼스는 정문을 통하기보다 계명대역에서 내려 은행나무가 늘어선 계명아트센터를 거쳐 동문으로 들어서는 편이 보다 낭만적이다. 행소박물관에 접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의 중압감도 놓칠 수 없다.
⑤2호선 영남대역

영남대도 만추 만끽 요건을 갖춘 곳이다. 다만 관악컨트리클럽에 캠퍼스를 지은 학교, 서울대 관악캠퍼스 다음으로 면적이 넓은 학교다보니 걷다 지칠 만큼 넓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별05'라는 이름의 일명 '홍만이 동상' 뒤 메타세쿼이아 대열, 민속원과 벚꽃나무 러브로드 등 주요 명소를 걷고 나면 장딴지가 아려온다. 체력에 따라 남매지까지 다녀와도 좋다.
⑥3호선 청라언덕역

단풍놀이에 최적화된 하늘열차를 타고 즐기는 3호선이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캠퍼스는 옛 효성여고와 대건고가 있던 자리다. 이런 교정에서 학생들이 학교에 다녔다면 단연 두 학교에선 시인과 화가가 대거 양성됐어야 한다. 현재는 가톨릭 사제 양성의 요람이다. 성스러운 분위기와 단풍과 낙엽이 빚어내는 고색미로 캠퍼스 전체가 침착하다.
⑦3호선 남산역

3호선 청라언덕역에 이은 남산역이다. 계명대 대명캠퍼스가 있는 곳이다. 붉은 벽돌에 담쟁이 넝쿨로 대표되는 캠퍼스는 미술대학이 있어선지 예술적인 정취가 강하게 풍긴다. T자형 본관과 그 앞 노천공연장 주변에 늘어선 나무들은 오랜 세월 미대생들의 모델이 된 경력 덕분인지, 영화에 많이 출연한 덕분인지 색감이 뚜렷하다.
◆대구시가 매년 추천한 단풍명소
대구시가 매년 추천한 단풍명소도 있다. '추억의 가을길'이라 이름이 붙었다. 우선 대구의 영산 팔공산과 앞산은 어떤 명목을 붙여도 빠지지 않는다. 대구의 허파 역할을 하고 있는 팔공산, 앞산, 두류공원은 나무가 많아 봄나들이 가기 좋은 곳이자, 피서지이자, 단풍명소다.

팔공산은 특히 파계사에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로 이어지는 팔공산순환도로가 단풍 지존 반열에 있다. 자동차로 가든, 걸어서 가든 상관없다. 어차피 주말에는 자동차들로 막혀 걷는 속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
앞산은 자락길이다. 경사도가 낮은 2~3부 능선을 따라 조성돼 걷기 수월하다. 고산골 메타세쿼이아길에서 달비골 청소년수련관까지 총 14km 구간, 6개 코스가 있다. 1km 거리의 고산골 코스가 대구사람들에게는 익숙하고 편하다. 7080의 초중고 시절 소풍 집결 장소다.

대구스타디움 주변과 대구수목원은 소풍가기 좋은 곳으로 꼽혔다. 대구수목원은 어느새 팔공산, 앞산, 두류공원에 비견될 단풍의 성지가 됐다. 6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니 웬만한 산에 버금간다. 대구수목원의 가을 매력은 입구에서 유실수원까지 이어지는 마중길, 그리고 1주차장에서 양치식물원까지 이어지는 흙길 산책로에서 터진다. 다음 달 10일까지 열리는 국화 전시회도 덤으로 볼거리다.
대구시는 대구의료원 주변 서구 그린웨이, 경북대 후문에서 복현오거리까지 이어지는 은행나무길, 삼성창조캠퍼스 북편 코오롱하늘채 인도 등을 일상생활 속에서 가을을 즐길 수 있는 길로 꼽았다. 일부 길은 은행열매가 심하게 떨어져 있다. 주의해야 한다.
◆경북 10개 시 관광 담당자들의 추천지
※질문="우리 고장에 찾아온 친구가 단풍명소를 추천해달라고 한다. 우리 고장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시간, 단 한 곳만 갈 수 있다고 한다. 어디를 추천하겠는가?"
※답="꼭 한 군데만 얘기해야 하나요?"
경북도내 10개 시의 관광 책임자 모두는 난감해했다. 한 군데만 꼽아야 해 어렵다는 것이었다. 답을 받고 보니 그 지역 대표 명소가 곧 단풍명소로 역할을 바꿔 나타나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나무가 많은 곳이 단풍명소였다. 주로 사찰이 추천된 이유다. 아래는 그들의 한 줄 추천사.
▶경주=은행나무가 2km 가량 도열해 있는 통일전 맞은편 가로수길이다. 만추의 새벽아침이면 사진동호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이다. 손에 닿을 것 같은 남산의 전경이 배경으로 서있어 준다. 버스라도 한 대 지나가면 셔터 터지는 소리가 '차르르' 들린다.

▶포항=단풍철 경상북도수목원은 붉게 차오른다. 수목원의 특성상 나무 종류와 수량에서 압도적이다. 도심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찾아온 거리만큼 보답을 해준다. 피톤치드 샤워까지 겸할 수 있어 건강 산책길로 삼아도 좋다.

▶안동=선비순례길의 일부인 선성수상길 부교 1km 코스다. 부교는 안동호 위에 떠있는 수상데크다. 안동호 비경을 감상하며 물 위를 걷는다. 안동호에 떨어진 와룡산의 단풍과 예술작품들로 도배된 예끼마을의 모습도 조화를 이룬다.

▶김천=인현왕후길의 일부인 수도산 청암사 인근이다. 무흘구곡 길은 차도임에도 자동차 왕래가 드물다. 트래킹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용추폭포까지 이어지는 경로를 따라 눈으로는 단풍을, 귀로는 계곡 물소리를 담는다. 근심 진공청소기가 따로 없다.

▶구미=수다사. 행정구역상 구미 무을면이다. 그러나 사실상 상주 공성면, 김천 감문면, 구미 무을면이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3개 시에서 멀지 않다. 외려 도심으로 치자면 김천시내에서 더 가깝다. 주차장이 사찰 코앞이라 등산 걱정할 일은 없다.

▶영천=여름철 청량감을 선물로 주던 보현산 천수누리길이 가을 단풍 감상에도 제격이다. 보현산 정상 시루봉과 천문대를 잇는 길 양쪽은 단풍색에 젖어있다. 무엇보다 천수누리길은 걷기도 편하다. 해발고도가 높아 전망이 좋다. 1km 길이로 심심하지 않을 거리다.

▶문경=소백산맥 자락이 흘러가는 문경은 주변 준령이 병풍처럼 싸고돌아 어딜 가든 절경이지만 한 군데를 꼽자면 문경새재다. 전국구 대표 단풍명소다. 주흘산과 조령산 사이 황톳길을 걸으면 휴양 치유가 따로 없다.

▶영주=부석사 은행나무길이다. 부석사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500m 가량 이어진 길은 부석사의 고즈넉한 모습을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주변 과수원의 사과도 제철이다. 다음 달 3일까지 사과축제도 열린다.

▶경산=반곡지 못 둑에는 왕버들이 수십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데 고목들이 저수지에 반영돼 환상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사계절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진 풍경은 청송 주산지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워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찾고 있다.

▶상주=성주봉자연휴양림이다.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이 조화를 이룬다. 단풍철이 되면 각양각색 오색단풍이 절정을 이뤄 산악동호회, 가족 등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성주봉 둘레길 황톳길 맨발 체험도 덤으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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