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부정 대학입시 의혹으로 촉발된 대학입시제도 공정성의 문제는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입시 공정성 제고 방안으로 정시 비율 확대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려면 이미 공론화를 통하여 결정된 2022학년 대학입시제도의 정시 비율 30%에서 각 대학들은 적어도 10% 이상 확대하여 신입생을 선발해야 할 것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정시 비율 확대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대통령이 바라는 대학입시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나라 교육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심히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전망된다.
첫째, 정시는 객관식 시험인 수능 성적을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이다. 4차 산업혁명 변화의 파고를 넘기 위해 우리 아이들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창조 능력,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수행할 수 없는 비자동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비자동화 영역에 속하는 일들은 하나의 답이 아닌 다양한 답을 창의적으로 찾는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대학입시에 유일한 하나의 답만을 찾게 하는 수능의 중요성을 확대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역행하는 교육적 조치이다.
둘째, 수능 성적에 근거한 정시 전형이 비교과 활동 스펙을 이용하는 학종 수시제도보다 더 공정하다는 보장이 없다.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수능 성적도 부모의 학벌, 경제 능력에 상당히 좌우된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1분위 상승할 때마다 수능 1, 2등급을 획득하는 자녀들의 수가 두 배로 증가된다. 결국 수능 성적에 기반한 정시도 온전히 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
셋째, 수능시험과 같은 객관식 시험은 다른 차원에서 공정성도 결여되어 있다. 언어학을 전공한 필자의 견해로는 수능 영어 문제 중 답으로 적합한 선택지가 없는 문항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험생은 어쨌든 선택지 하나를 답으로 골라야 한다. 출제자가 답으로 정한 선택지를 고른 수험생들만 점수를 획득한다. 이렇게 받은 점수로 대학입시의 당락이 좌우된다면 이 또한 결과의 공정성조차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 외에도 정시 비율 확대는 대학의 교육에 악영향을 끼치는 문제를 야기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보면 거의 모든 학과에서 정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가장 낮다. 그 이유는 단순히 하나의 답을 고르는 객관식 문제풀이에만 익숙한 정시로 입학한 학생은 수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에 비에 대학의 논술형 문제나 다양한 프로젝트형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향을 보이는 학생이 더 많이 대학에 들어오면 올수록 그만큼 대학 교육의 수월성은 저하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학입시의 교육 역류효과가 너무 크다. 대학입시에 있어 객관식 시험인 수능을 위주로 하는 정시 비율을 확대한다면 초·중등 모든 교과 과정은 객관식 문제풀이 능력인 수렴적 사고력의 향상에 집중할 것이다. 따라서 확산적 사고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하는 2015 개정 초·중등 교육과정의 정상화는 물 건너 갈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 교육의 결과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정시 비율의 확대는 우리 교육 경쟁력을 갉아먹고 국가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교육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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