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 이수한다. 그렇게 누적된 학점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는다. 이에 따라 학점을 기준으로 교육과정이 편성된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이 확보, 확대되는 것이다. 이처럼 고교 현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오는 제도가 고교학점제다.
더 간단히 말하면 현재 대학들이 운영하는 학점제와 비슷한 게 고교학점제다. 현재는 시범학교, 연구학교가 운영 중인 상태. 2022년부터 특성화고, 마이스터고를 대상으로 먼저 시행된다. 현재 초교 5학년이 고교에 입학하는 2025년부터는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고교학점제에 맞춰 학교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비슬고, 학교 공간이 변하다

멍때리기실, 예시바룸, 공간 樂(락), 공간 엉뚱, Zoo樓(주루). 이름이 다들 기발하고 재미있다. 이름만으론 무엇을 하는 곳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런 이름이 붙은 공간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개교 3년차에 접어든 대구 달성군의 비슬고등학교(교장 이재철)가 그곳이다.
학교 공간 혁신은 최근 교육계의 화두 중 하나. 올해 초 교육부가 미래형 학교 공간 혁신 사업에 총 18조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대구시교육청도 미래학교 공간 구축 사업을 공모, 선정된 학교에 약 2억원씩 예산을 배정해 학교 공간을 새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비슬고의 변화가 더 돋보이는 것은 이 예산을 받지 않고도 기발하고 재미있는 공간을 많이 만들었다는 점. 이같은 공간들이 만들어진 목적은 하나다. 모두 학생들의 수업과 활동을 위한 것이다. 학교 구성원들이 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좀 더 즐겁고 재미있게 수업하고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멍때리기'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다는 의미를 담은 속어. 멍때리기실에서 학생들은 한숨을 돌리며 지친 머리를 식힌다. 공간 樂에는 복도 바닥에 대형 과녁이 설치돼 있다. 신발 던지기가 가능하다. 공간 엉뚱을 찾으면 4인용 그네 테이블과 2인용 시소 테이블을 만날 수 있다.
공부할 수 있는 공간도 여러 곳이다. '예시바'는 유대인들의 탈무드 교육기관. 예시바룸은 강화 유리칠판 등을 갖춰 1대 1 토론 학습(하브루타), 그룹 학습이 가능한 공간이다. 수학 보드게임실에다 ▷연극-드라마 수업실 ▷각종 참고서와 자습서를 비치한 북뱅크 ▷일간지와 진로별 전문 잡지를 갖춘 매거진&뉴스룸도 있다.
비슬고 학생들은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 학교 곳곳을 누빈다. 책이나 잡지를 보고 친구들과 토론을 벌인다. 한데 모여 앉아 수다도 떤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 제격이다. 선베드에 누워 햇볕을 쬐기도 한다. 그 덕분에 학생들의 만족도 역시 높다.
이같은 변화는 고교학점제와 무관하지 않다. 비슬고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 희망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도록 하고 있다. 선택 과목들의 특색이나 수업 내용, 활동 등에 적합하게 다양한 공간으로 이동해 수업할 수 있도록 공간을 재구성한 것이다.
문웅열 수업혁신부장 교사는 비슬고의 학교 공간 구축 업무를 맡고 있다. 문 교사는 "고교학점제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교실이 필요하고, 학생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학습 지원 공간도 있어야 한다"며 "학교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서 학생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고 기발한 공간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덕원고, 교육과정을 바꾸다

#2학년 정현민 학생은 정신과 간호사가 되길 원한다. 사람의 몸과 마음, 의료기기가 정현민 학생의 주요 관심사. 1학기 때 물리학Ⅰ과 심리학을 선택했고 2학기에는 생명과학Ⅰ, 화학Ⅰ, 환경 수업을 듣는다. 3학년 때에는 선택과목으로 수학과제탐구, 심화국어, 보건 등을 들을 예정이다.
정현민 학생은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한 것이어서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이 없다. 대부분의 학생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수업 분위기도 좋다"며 "흥미 있는 분야에 대해 배울 기회가 있어서 만족한다"고 했다.
#2학년 이도훈 학생의 꿈은 한의사다. 1학기 때 그가 선택과목으로 고른 것은 생명과학Ⅰ, 수학Ⅱ, 한문Ⅰ. 2학기에는 물리학Ⅰ, 지구과학Ⅰ, 미적분, 확률과 통계, 한문Ⅱ 수업에 들어간다. 내년엔 보건과 생명과학Ⅱ, 화학Ⅱ, 수학과제탐구를 선택과목으로 수강할 계획이다.
이도훈 학생은 "진로 담당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 여러 교과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직접 과목을 선택하고 진로 로드맵을 작성할 수 있었다"며 "비슷한 진로 계획을 세운 친구끼리 진로와 선택과목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대구 수성구의 덕원고등학교(교장 서경학)는 교과학점제를 도입해 적극적으로 운영 중이다. 학생의 흥미와 적성에 맞게 다양한 선택과목을 개설했고, 평가와 기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애쓰고 있다.
덕원고는 최대한 많은 학생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입학 때부터 진로, 학업 상담을 통해 수강 계획을 세우게 하고 5월과 7월 수요 조사를 진행해 선택과목을 늘려나갔다. 2학년 경우 1학기에 22개, 2학기에 28개의 과목이 개설됐다.

물론 이같은 변화가 쉽지는 않다. 학생들이 신청한 과목이 많아 반 편성이 복잡해지고, 개인별 시간표를 짜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많은 시행 착오를 거친 덕원고는 수강 신청과 시간표 작성 등 관련 작업을 효율화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고교학점제가 널리 시행될 때 다른 학교에 운영 노하우를 좀 더 쉽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고교학점제를 이끄는 조치연 교육과정부장 교사는 "교과학점제가 안착하려면 양적, 질적으로 교사 자원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1명의 교사가 다양한 과목을 가르쳐야 하는 부담이 늘고 있다"며 "고1 때 진로를 정하고 선택과목을 정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학생이 적지 않다. 중학교 때부터 적극적으로 고교 과목에 대한 안내 및 진로 지도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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