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2019년 목민심서

이상헌 경제부장
이상헌 경제부장

지난 3월 이 지면에 '저 꽃들이 지고 나면…'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두보의 시 '강가에서 홀로 걸으며 꽃을 찾다'(江畔獨步尋花)를 인용하며 우리 앞날을 걱정했다. 안타깝게도 10월의 마지막 날, 소슬바람 맞으며 뒤돌아보니 차라리 그때가 나았다 싶다.

지치고 쇠약해진 우리 경제는 예상보다 병이 더 깊어 보인다. 의심치 않았던 연 2% 경제성장률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이미 민간 연구소에선 내년 성장률 역시 1%대에 그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어디 성장률뿐이랴. 쏟아지는 수출·고용·물가 등등 온갖 경제지표들은 '역대급' 참사다.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을 테니 일일이 나열하지 않는 게 그나마 독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예의일 듯하다.

경제의 본래말은 세상을 잘 경영해서 백성을 고난에서 구제한다는 뜻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이다. 두보의 시 '빈교행'(貧交行)에 나오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이자 사상가, 명재상이었던 관중은 '군주의 가장 큰 공적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고, 가장 큰 죄는 나라를 빈약하게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최선의 정치행위는 국민을 이롭게 하는 일임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대통령이 최근 국회 시정연설에서 '결국' 인정한 것처럼 우리 경제는 엄중한 상황을 맞고 있다. 물론 대통령 연설문 그대로 무역의존도 높은 한국으로선 나라 밖 사정에 따른 타격이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필요한 정책일지라도 난세의 시의(時宜)에 부합하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점은 무척 실망스럽다.

빈사 상태에 몰린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의 솔직한 사과와 함께 정책 유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확대, 보여주기 식 일자리 만들기 등이 대표적이다. 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할 때 흙으로 밥을 짓고, 진흙으로 국을 끓이고, 나무로 고기를 굽지만 해가 저물면 집에 가서 진짜 밥을 먹는 것처럼 현실성이 없으면 나라를 바르게 할 수 없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위기는 늘 반복됐고, 위기 이후에는 다시 성장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대응만 잘하면 나아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의 뉴 노멀(New Normal)보다 더 큰 문제는 오히려 '권위'와 '신뢰'의 몰락이라 생각한다. 지지율이 떨어지자 뜬금없이 입시제도 변화를 밝힌 대통령, 적장을 낙마시킨 기쁨에 상품권 잔치를 벌인 야당 원내대표, 학생들에게 사상 주입을 했다는 의혹를 받는 교사들, 미성년 자녀를 부정하게 자신의 논문 저자로 둔갑시킨 교수들…. 눈을 씻고 봐도 믿을 사람이 없다.

사회지도층의 뼈를 깎는 자성이 절실하다.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 시늉은 이제 국민이 모를 리 없다. 대한민국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조국 사태 동안 회자됐던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과 그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면 희한하게 잘 보인다"는 어느 변호사의 날카로운 지적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조언 하나를 사족으로 덧붙인다. '위기 때 임기응변할 줄 아는 군주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나 그런 군주는 매우 드물다. 타고난 성품을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외길을 걸어 늘 성공을 거둔 경우는 더 심하다. 다만 시류 변화를 좇아 기왕의 성공 방식을 과감히 바꿀 줄 알면 그간의 행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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