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먹방에도 이런 완성도가?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2'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2’, 먹방 파이터 백종원과 연출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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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2' 스틸컷

먹방에도 이런 완성도가 가능할 거라고 그 누가 생각했을까. 물론 해외의 유명 음식 다큐멘터리에는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영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정도의 깊이와 재미 그리고 연출미학이 균형을 이룬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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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2' 스틸컷

◆'바람의 파이터'가 도장 깨기 하듯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라고 하면 비교적 젊은 세대는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하지만 실상 이 프로그램이 그 제목과 캐릭터 연출 방식으로 차용한 건, 나이든 세대가 기억하는 고우영 화백의 '대야망', 또 그 다음 세대가 아는 방학기 화백의 '바람의 파이터' 속 최배달(본명 최영의)일 것이다.

도복 하나 달랑 어깨에 들쳐 메고 일본은 물론 중국 그리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도장 깨기'를 했던 전설적인 실존인물. 어딘지 풍성한 몸에 도복 대신 백팩을 한쪽 어깨에 둘러매고 가판 음식들이 즐비한 거리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가는 백종원의 모습은 이제 그 현지 '음식 깨기'를 할 것이라는 일종의 신호와 같은 연출이다.

최배달이 그 엄청난 정권과 발차기로 소의 뿔을 꺾고 넘어뜨렸듯, 백종원은 잘 알지 못하면 시도하기조차 어딘지 꺼려지는 시장 골목 음식들이나 길거리 음식들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어치워 버린다.

물론 그건 일종의 유머를 품고 있지만, 거기에는 의미도 담겨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어 외국에 대한 감수성도 이제는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먹어본다는 건 꽤 만만찮은 도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현지 길거리에서 풍겨 나오는 낯선 음식 냄새들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조차 알아보기 힘든 음식 앞에서 머뭇거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못 먹는 음식이 들었을 것 같고,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맛일 것 같은 불안감. 게다가 현지인들이 가는 음식점들은 우리네 맛집들이 그러하듯이 잘 꾸며진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길거리 노점이거나,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야 찾을 수 있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먹기도 전에 마음부터 불편해진다.

백종원이 '바람의 파이터'가 되어 그 골목으로 들어가 '음식 깨기'를 한다는 연출적 미학과 유머는 그래서 통한다. 심지어 이 사람은 쉽게 도전하지 못할 현지식들을 너무나 맛있게 먹어치운다. 그러면서 그 곳에 가면 밤에 잠을 못 이룬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뭘 먹을까 설레고 고민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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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2' 스틸컷

◆먹방도 백종원이 하면 다르더라

물론 백종원이 '음식 깨기' 하듯 음식만 잘 먹는 건 아니다. 그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2에서 찾은 터키, 하노이, 뉴욕, 시안, 멕시코시티, 타이베이의 해박한 현지 음식에 대한 식견을 알려준다.

터키 하면 떠올리는 음식이 케밥 정도지만 백종원은 귀국길에 발목을 잡는 터키식 해장국 이시켐베 초르바스라는 음식을 소개해준다. 이시켐베가 내장을 뜻하고 초르바스가 국이나 수프를 뜻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으로 대충 이 음식이 내장탕에 해당한다는 걸 말해준 뒤 소금과 후추, 고춧가루 같은 걸 자기 입에 맞춰 먹는다며 먹는 방법 또한 상세히 설명해준다.

하노이라고 하면 베트남 쌀국수만 떠올리겠지만, 백종원은 길거리에서 찹쌀밥에 녹두를 썰어 얹어 만든 쏘이 쎄오를 소개한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라는 제목에 걸맞게 길거리 한 편에 쪼그리고 앉아 현지 꼬마와 함께 맛나게 그 음식을 먹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베트남에 갔을 때 편견어린 시선으로 어딘지 불결할 것 같아 시도조차 못해봤던 현지인들의 아침 식사 풍경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멕시코시티라고 하면 타코를 먼저 떠올리지만 백종원은 시장 통에서 파는 판시따라는 국물이 걸쭉한 음식에 푹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멕시코 속 한국이라며 이른바 '멕시코리아'라고 자막이 붙은 이 음식을 국물 맛만 본 백종원은 우리네 시장통에서 나올 법한 "아따-"라는 감탄사로 친근하게 만들어버린다. "끝내준다. 여기 한국이에요"라는 그의 한 마디는 아마도 멕시코시티를 찾는 이들이 이 음식을 찾아 시장통을 어슬렁대게 만들지 않을까.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그가 음식을 이토록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경험과 정보를 통해 이미 아는 맛이기 때문이다. 백종원은 바로 자신이 아는 맛을 정보로 제공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도 간접적으로 그 맛을 유추하게 만든다. 이러니 현지에서는 낯설어 도전조차 하기 꺼려졌던 음식을 보며 침이 고이는 기이한 경험을 시청자들은 하게 된다.

또한 백종원 특유의 유머감각은 음식은 물론이고 현지인들에 대한 어색함이나 불편함도 지워낸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옆 사람과 눈빛만으로 함께 그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공유하고, 때론 현지인들이 먹는 방식을 따라함으로써 어떤 공감대를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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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2' 포스터

◆거의 예술적인 다큐 수준의 연출미학

하지만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을 그저 먹방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건 예술적인 수준의 연출미학 덕분이다. 이미 시즌1에서부터 화제가 됐던 카메라를 역으로 돌려 그 음식의 재료를 찾아가는 연출방식은 시즌2에서도 여전히 흥미롭게 보인다.

우리에게 흑당밀크티로 잘 알려진 타이베이의 전주나이차의 '진주'에 해당하는 알갱이가 남미가 주산지인 카사바 전분으로 만들어진다는 백종원의 설명에 따라 카메라는 밀크티 위에 얹어진 진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뒤로 돌아가는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무수히 많은 과정들을 거치고 결국은 맨 마지막에 드론으로 촬영된 푸르른 자연이 비춰지는 모습은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걸어온 길을 새삼 환기시킨다. 자연 어딘가에서 자라고 채취되어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조리되어 만들어져 우리 밥상에까지 올라온 재료들이 남다른 친근감으로 다가온다.

자연 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바뀐 결과물을 그 원형과 이어주는 이런 연출방식은 음식에 대한 친근함을 살리는 효과도 만들어준다. 이를 테면 끓이고 튀기고 해서 그 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이 주는 낯설음을 그 원재료를 보여줌으로써 친숙하게 해주는 것.

또 특정 지역의 어떤 음식에 얽힌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옛날 사진을 가져와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과 요소들을 CG를 활용해 동영상으로 재구성하는 연출방식도 사용된다. 이런 연출은 보다 쉽게 그 음식의 역사를 알게 해주고, 나아가 음식을 통해 그 나라와 지역의 문화 또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해준다.

백종원이라는 먹방 파이터와 그의 식견을 통해 깨버리는 외국 현지 음식에 대한 선입견 그리고 정보를 영상화하는 효과적이고 예술적인 연출방식.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먹방에도 이런 완성도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외국에 나가 바로 실전에도 쓸 수 있을 만큼의 실용성까지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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