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신형철의 글이 비판이 적다는 이유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그는 어쩔 수 없다고, 한정된 시간 안에서 좋은 것만 말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잘라 말한다. 욕망과 사랑을 대놓고 발설하면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인어공주처럼 태생이 벙어리 냉가슴인 예술을 통역하고 위무하기 위해 비평가가 존재한다는 인터뷰어의 말은 곧 우리나라 평단에 신형철이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영화에세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 있다. 이번 책은 저자의 두 번째 산문집으로, 2010년 이후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 슬픔, 소설, 사회, 시, 문화의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었다. 1부는 지난 10년간 유독 슬픔에 대한 글이 많았기에 따로 묶어 배치하였다.
영화 「킬링디어」의 첫 장면에서 뛰고 있는 심장을 보며 느끼는 저자의 생각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른 객체로서 타인이라는 한계를 인정하게 만든다. 이 특별한 인식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펼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심장이다. 심장은 언제나 제 주인만을 위해 뛰고, 계속 뛰기 위해서만 뛴다. 타인의 몸속에서 뛸 수 없고 타인의 슬픔 때문에 멈추지도 않는다.(28쪽)" 그렇다. 나는 네가 될 수 없다. '당신은 슬프지만 나는 지겹다.' 이것이 너와 내가 타인이라는 한계의 슬픔이다. 너의 슬픔을 알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에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그 남자네 집'에 대한 글의 한 대목을 보자. 선을 보고 조건에 맞는 남자와 약혼한 여자가 첫사랑을 찾아가 이별을 고한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첫사랑이었던 '그 남자'가 이 네 문장과 더불어, 언젠가는 졸업해야하는 '학교'가 되면서, 소설에서 퇴장하고 만다. 대가의 문장이다." (중략) "비유란 이런 것이다. 같은 말을 아름답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사실'을 영원한 '진실'로 못질해 버리는 것이다.(132쪽)" 무엇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안다는 것은 인식에 대한 세심한 감지능력이다. 차이 같지 않는 차이를 감지하는 이 정확한 인식만이 진정한 위로다. 문학이나 세상일이나.
지면(紙面)은 지면(地面)이다. 글짓기는 집짓기와 유사하다. '있을 만하고 또 있어야만 하는 건물'은 결국 인식의 차이다. 한 작품이 왜 좋은지와 어떻게 좋은 지에 대해 자신만의 특정한 인식을 생산해 내고, 건축에 적합한 자재를 찾듯이 정확한 문장을 찾는다. 물론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주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견고하고 온전한 하나의 건물은 다른 무엇으로는 대체될 수 없다. 자, 이제 건물은 있어야만 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독자 스스로를 납득하게 만드는 저자만의 설득력이다. "좋은 작품은 내게 와서 내가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을 앗아 가거나 끝내 돌려줄 수 없을 것을 놓고 간다. 책 읽기란 그런 것이다.(402쪽)"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당분간은 '신형철 따라 읽기'가 될 것이다.
우은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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