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격 폭락+소비 부진…돼지열병으로 속 타는 양돈농가

영천 등 돼지 사육농가들 존폐 기로 내몰리며 '아우성'...소비촉진 대책 절실해

경북 영천시 대창면에 있는 한 양돈농장에 출하를 기다리는 돼지들이 가득하다. 이 농장은 ASF 여파에 따른 돼지 가격 하락 및 소비 부진으로 지난 9월부터 2천만원이 넘는 손해를 보며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강선일 기자
경북 영천시 대창면에 있는 한 양돈농장에 출하를 기다리는 돼지들이 가득하다. 이 농장은 ASF 여파에 따른 돼지 가격 하락 및 소비 부진으로 지난 9월부터 2천만원이 넘는 손해를 보며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강선일 기자
영천시 대창면에 있는 한 돼지 사육농장에 출하를 기다리고 있는 돼지들이 가득하다. 강선일 기자

"돼지고기 가격이 40%나 폭락한데다 소비 부진까지 겹쳐 사육농가는 물론 양돈산업 생태계마저 붕괴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경북지역 양돈농가들이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후폭풍 탓에 존폐 기로에 섰다.

ASF 여파를 피하기 위한 도축물량 급증으로 산지가격이 폭락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소비까지 감소해 돼지 시세가 생산비를 밑도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한돈협회 영천시지부 한동윤 사무국장은 "가격 하락과 소비 부진의 이중고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지역 양돈농가들의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다"면서 "한마디로 심각한 위기상황"이라고 했다.

◆'추락하는' 돼지값… '깊어지는' 소비부진

지난 9월 17일 경기도 연천에서 발병한 ASF는 정부와 양돈농가들의 적극적 방역작업으로 확산이 차단되긴 했지만, 경북을 비롯한 ASF 청정지역은 출하물량 급증으로 돼지가격 폭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31일 축산물품질평가원 등에 따르면 이날 농협 고령축산물공판장에서 거래된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kg당 2천900원대로 ASF 발병 이전인 지난 9월 초 4천500~4천700원대에 비해 40% 정도 하락했다. 그나마 지난 28일 kg당 2천570원에 비하면 10% 정도 가격이 올랐다.

이런 시세는 kg당 4천원 안팎인 원가를 밑도는 수준이다. 양돈농가에서 110kg 돼지 한두를 출하할 때마다 14만~15만원 정도 손해를 보는 셈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양돈관측 보고서에 따르면 올 12월부터 내년 4월까지 돼지 등급 판정 두수는 740만 마리로 전년 대비 1.1% 줄지만 돼지고기 소비 감소로 kg당 가격은 평균 3천400~3천600원으로 생산비 이하 시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돈협회와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는 시세 하락의 최대 원인으로 '소비 부진'을 꼽고 있다.

ASF가 인체에 무해하지만 소비자들이 막연한 두려움에 돼지고기를 찾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학교에선 학생들 급식에서 돼지고기를 빼달라는 학부모들의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불안심리가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지난 9일부터 ASF가 잠복상태로 접어들면서 양돈농가들의 출하물량이 계속 늘어나자 도축·육가공업체들도 무게 감량 등의 이유를 내세워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는 횡포도 부리고 있다.

이에 따라 한돈협회와 한돈자조금관리위는 11월부터 정부 및 지자체, 농(축)협 등 관계기관과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ASF 대응책 마련과 돼지고기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돼지 두수 조정, 대대적 할인판매 행사 등에 나설 계획이다.

대한한돈협회 영천시지부는 지난 30일 영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돼지고기 소비 촉진을 위한 홍보행사로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에 돼지고기 1t을 기부하는 행사를 가졌다. 영천시 제공
영천시 대창면에 있는 한 돼지 사육농장에 출하를 기다리고 있는 돼지들이 가득하다. 강선일 기자

◆'아우성' 치는 경북지역 양돈농가들

돼지 사육 규모가 전국 3위인 경북지역은 ASF 청정지역이지만 돼지열병 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지역 양돈농가들의 경영난이 심각한 상태다.

가격 하락과 소비 부진의 이중고에도 사료값 등 생산비 부담을 덜기 위해 사육 중인 돼지 출하를 계속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돼지는 180일(6개월) 정도가 지나면 110kg 정도가 되는데 이 때가 품질이 가장 우수해 출하의 최적기고, 월별로는 9~11월에 가장 많은 물량이 출하된다.

이렇다 보니 영천지역의 경우 한 곳뿐인 도축·육가공업체에 물량을 납품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출하물량을 실은 차량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영천은 현재 70여개 농장에서 20만여 마리를 키워 경북에서 돼지 사육두수가 가장 많다.

이 업체는 ASF 발병 이전에는 하루 평균 700~800두의 돼지를 육가공해 왔으나 현재는 1천200두 정도를 작업하고 있다.

영천시 대창면에서 1천700두의 돼지를 키우고 있는 농장주 박모(48) 씨는 "인부 3명을 두고 한 달에 260~300두 정도의 돼지를 출하하고 있는데 지난 9월부터 이달까지 2천만원 정도의 손해가 났다"며 "가격 하락은 물론 소비 부진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경영난에 처할 수 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령(49개 농가·13만여 마리), 경주(73개 농가·12만여 마리), 안동(63개 농가·10만여 마리), 군위(44개 농가·1만7천여 마리) 등 경북지역의 다른 양돈농가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더욱이 ASF 발병 초기 정부에서 돼지 이동을 제한한 탓에 출하물량을 제때 소진하지 못하다 보니 경영난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군위지역 한 양돈농가는 "가격 하락이나 소비 부진 국면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와 걱정이다"며 "평소 공급과 수요의 갭이 5% 내에서 돼지 가격 오름세와 내림세가 결정되는데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이런 추세라면 내년 5월까지 돼지 값 하락이 지속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했다.

한돈협회 영천시지부는 "가장 큰 문제는 소비 부진"이라며 "ASF는 사람에게 무해하고, 발생지역에서의 반출이 원천 봉쇄되기 때문에 시중에 판매되는 돼지고기는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했다.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는 오는 11월 말까지 온·오프라인 및 유통업계, 소비자단체 등과 연계해 돼지고기 소비 촉진 및 가격 안전을 위한
대한한돈협회 영천시지부는 지난 30일 영천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돼지고기 소비 촉진을 위한 홍보행사로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에 돼지고기 1t을 기부하는 행사를 가졌다. 영천시 제공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는 오는 11월 말까지 온·오프라인 및 유통업계, 소비자단체 등과 연계해 돼지고기 소비 촉진 및 가격 안전을 위한 '한돈농가 응원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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