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웰다잉, "우리는 죽음과 더불어 살아간다"

정순태 웰다잉 전문강사, "좋은 죽음도 배워야 가능하다" 조언

고령사회로 급격히 진입하면서 어르신을 중심으로
고령사회로 급격히 진입하면서 어르신을 중심으로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사진은 달성군장애인복지관에서 열린 웰다잉 강좌. 세듀랩 제공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소는 "죽음을 두려워 말라.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죽음은 없고, 죽음이 닥쳤을 때 우리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의 대부분 사람들은 죽음을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하거나 남의 일로 여기고, 두려워하며 회피한다. 때문에 노후준비 없이 노후를 맞고 비참한 죽음에 직면한다.

고령사회가 급격히 진행하면서 '웰다잉'에 대한 어르신들의 관심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웰다잉에 대한 내실은 부족한 편이다. 죽음을 체험한다며 준비없이 덜컥 입관체험을 시켰다가 오히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기도 하고, 어르신들의 성과 안전 등 노인 삶에 대한 강의가 웰다잉 교육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정순태(61) 국민건강보험공단 웰다잉 전문강사(세듀랩 대표)는 "웰다잉은 죽음에 대한 인식과 사색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면서 "긴 시간을 질병 상태에서 맞는 죽음은 좋은 죽음이라고 할 수 없다. 삶의 다른 과정을 선택하듯 죽음의 과정도 자신이 선택해야 할 삶의 문제"라고 말했다.

▶죽음은 삶의 의미를 더한다

정순태 대표는 2005년 블루오션으로 불리던 '죽음산업'에 뛰어든 이후 상조회사, 장례식장, 추모공원 등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죽음의 문제는 삶의 문제라는 걸 깨닫고 관련 분야 공부를 시작해 석사(2007년)와 박사(2016년) 학위를 받았다. 정 대표가 숱한 죽음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은 이렇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방법대로 죽어갔습니다. 죽음은 삶의 반영이며 삶의 한 부분이란 걸 알게되었죠. 좋은 죽음이 있으려면 좋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확실히 오지만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갑작스럽고 준비되지 않는 죽음이 가장 큰 두려움이다. 죽음에는 4가지 특성이 있다. 누구나 한 번은 죽어야 하고(평등성), 죽었다 다시 살아날 수 없으며(불가역성), 죽어본 적이 없고(불가지성), 혼자 감당해야 한다(단독성)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선조들은 인간세계의 연장선에서 죽음을 맞았다. 윤달이면 미리 수의를 준비하고 가묘를 세우며 죽음을 새겼다. 임종 때가 오면 자기의 죽음을 예견하고 자녀를 불러 모이게 한 후 유언을 하고, 과거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손을 잡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며, 자손 앞에서 자신의 몫을 다한 흡족한 죽음을 맞으려고 했다. 슬퍼하는 가족을 달래고 약을 물리치고 여한이 없음을 담담히 전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죽음과 일상이 분리, 격리, 은닉되는 상황에 처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회피가 원인이자 결과이다. 의료진이 임종을 결정하면서 가족과 함께 하는 임종의례는 생략되고 있다. 가족과 친인척이 주관하던 장례식도 수익과 효율 중심의 비즈니스로 변했고, 죽어가는 사람과 가족이 멀어지는 만큼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음과 멀어져갔다.

"의학과 통계학의 발달로 현대인은 평균적인 관점에서 자신 앞에 놓인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좀 더 자세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실천하는 숙제 만 남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 대표는 웰다잉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서류 3가지로 ▷인간관계의 정리와 함께 재정·상속 문제 등에 관한 유언장 ▷연명치료나 말기 병간호에 대비한 연명의료 관련 의사표시 ▷장례나 제사 등 사후 의례에 대한 의견이나 요청을 적은 의례의향서를 제시했다.

▶좋은 죽음도 배워야 가능하다

나쁜 죽음을 피하는 것도 웰다잉이다. 잘 늙어야 잘 죽는다. 노인의 소외, 빈곤, 학대 속에서 웰다잉은 없다. 잘 늙으려면 노후 준비가 필요하다. 웰다잉 교육은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가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가르친다.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서 의료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죽음 준비는 어떻게 하는 지를 짚는다.

'좋은죽음'의 개념에는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알고 있어야 하며, 그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 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죽어가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속성을 포함한다. 또한 죽음은 충분히 살았다고 여겨질 때 이루어져야 하고, 죽음의 과정이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한다. 죽음은 비교적 덜 고통스럽고 비판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이나 그 가족이 임종치료에 대한 결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죽은 후에 극락이나 천당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가느냐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종착점인 임종을 보면 좋은 곳으로 갈 사람인지 그 반대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강의 후 '연명의료 의향서를 당장 쓰야겠다' '집을 정리정돈 해야겠다'는 어르신의 반응이 많다. 3~5년 전부터 안 입는 옷을 버리지 못하면서 죽음을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생전에 필요한 사람에게 주면 '선물'이 되지만, 죽은 뒤에 주면 '유물'로 전락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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