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은주의 잉여현실] 조커, 악당이 된 한 남자의 잉여현실

이은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이은주 힐링드라마아트센터 대표,심리치료사

'조커'는 배트맨 시리즈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말씀을 잘 듣고 착하고 섬세하고 유약하다. 하지만 세상은 비정하고 약자를 누르고 조롱하며 무시로 침범하고 폭력을 한다. 약자들은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아닌 척 좋은 척 웃는 얼굴의 가면을 써야 한다. 웃음은 약자의 전형적인 자기방어 양식 중 하나다. 억압된 두려움과 슬픔의 가면이 웃음이다.

조커는 어느 순간 가면웃음 뒤에 숨겨진 감정과 분노를 드러낸다. 마음속에서 꿈틀대던 상상의 세계, 즉 잉여현실(사이코드라마 따위와 같은 심리치료극에서, 참여자인 주인공이 실재 현실을 뛰어넘어 경험하는 극 속의 현실)의 세계로 들어간다.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줘야 한다고 믿었던 틀을 깨고, 자기를 모욕했던 자들을 죽이기 시작한다. 지하철에서 한 여성을 희롱하던 세 은행원을 죽이고, 웃음의 가면 속에서 누추한 인생을 살게 한 엄마를 살해하고, 자신을 무시하고 때렸던 직장 동료와 첫 만남에서 자신을 비웃었던 옆집 애인도 죽인다. 조커는 TV에 나오고 유명해지고 내가 원하는 쇼 프로그램에 나가 스타가 된다.

거리는 점점 피에로 분장을 한 억압당하는 또 다른 조커들로 넘쳐난다. 그는 부조리한 세상에 돌을 던지고 분노와 저항의 도화선에 불을 댕기고 영웅이 된 것이다. 마치 프랑스대혁명을 이끌었던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라도 된 것처럼. 병원 복도 끝에서 추는 춤은 음울한 세상을 감싸고 지금 여기를 축하하듯 가볍고 우아하다.

인정이 없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짓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우리의 현실에도 수많은 '조커'들이 있다. 시장에도, 교회에도, 직장에도, 집에도 있고 학교에도 있다. 우정을 나누기보다는 경쟁해서 이기기, 존중하기보다는 조롱하고 학대하는 관계 방식이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에도 수많은 '조커'들이 있다.

특히, 폭력과 멸시 속에 자라는 아이들의 분노와 슬픔을 다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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