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이의 아빠 안영호(가명·73) 씨는 구두약이 배어 새까매진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불우했던 젊은 시절을 뒤로 하고 구둣방을 시작한 뒤 늦깎이 장가를 갔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자식이 줄줄이 태어나면서 지치는 줄 모르고 일을 했다.
넉넉지 않아도 행복했던 여섯 식구에게 수년 전부터 병마가 찾아들면서 시름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안 씨는 "내 간암도 모자라 이제는 부인이 대장암을 앓게 됐다"며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병원비와 생활고를 감당하기 힘들어 눈앞이 깜깜하다"고 말했다.
◆ 대구 중앙통의 구두닦이
안 씨는 대구 중구에서 30년 넘게 구둣방을 운영하고 있다. 성인 세 명이 들어가면 꽉 찰 만큼 좁고 허름한 곳이지만 배운 것 없는 그에게 이곳은 삶을 뒷받침해준 든든한 터전이다.
한국전쟁 후 경남에서 대구로 흘러들어온 그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산격동의 산동네에 살았던 안 씨는 10대 무렵 집을 나와 길거리를 방황했다. 항상 술에 절어 폭력을 일삼았던 부친을 피해 대구역을 전전하며 노숙생활을 했던 것. 그는 시장을 떠돌며 일용직으로 하루 벌어 하루 술 마시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던 중 지인이 '그래도 너는 착실히 할 것 같으니 일하면서 돈을 갚아라'며 구둣방을 차려준 것이 삶을 뒤바꾸는 계기가 됐다.
안 씨는 50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결혼에 슬하에 네 자녀를 뒀다. 큰아들(23)이 이제 막 전역을 했을 정도다. 그는 "부모님을 못 잊어 찾아갔는데 예전 집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며 "그 후로도 소식을 수소문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혼자 남은 외로움에 가족을 꾸리고 싶단 간절함이 생겼고, 부인을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간암 벗어나니 가족들이 아프다네요
안 씨는 2017년 구두수선 장비를 옮기다 발을 헛디뎌 뒤로 넘어져 허리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허리수술에 필요한 검진을 받다가 예상치 못한 간암 진단을 받게 됐다. 그는 막상 투병하면서도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자녀들이 아직 취업을 못한데다 막내딸은 이제 중학생이라 당장 천 원짜리 한 장이 아쉬운 형편인 것. 안 씨는 "기초생활수급금으로 여섯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빠듯하다" 며 "구둣방이라도 하면 월 20~30만 원씩은 버는데 일을 못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다행히 안 씨는 몇 차례 수술을 받은 뒤 회복단계에 있지만, 이제는 부인(57)이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부인은 지난 9월 수술을 받았지만 로봇 장비가 투입된 수술이 비보험인 탓에 900만 원을 지인들에게 사정해 겨우 빌렸다.
부인이 항암치료 중인 가운데 최근에는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둘째 아들마저 만성 담낭염으로 앓아누웠다. 안 씨는 구둣방 일은커녕 매일 병원으로 출퇴근하기 바쁘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둘째 아들은 장애인 채용으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했다. 안 씨는 허리춤에 달린 카페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렸다. 아들이 취업 선물이라고 준 열쇠고리에 뛸 듯이 기뻤지만 그 기쁨도 아들의 병치레로 1년이 채 못갔다.
안 씨는 "요즘 자꾸 아이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첫째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무렵 구둣방을 차려 줬던 지인이 갑자기 구둣방을 넘길 것을 요구했던 것. 그는 "그 때 네 식구가 사글세 방으로 옮기면서까지 돈을 갚아 겨우 지켰는데, 내가 맨발로 펑펑 울고 있으니 첫째가 내 신발을 들고 졸졸 따라다니며 위로하더라"면서 "아직 아이들은 내가 필요한데 자꾸 가족들에게 좋지 않은 소식만 날아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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