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던가요?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던가요? 소쩍새 울음과 먹구름 속 천둥과 간밤 무서리 안부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가을은 왔고 국화꽃은 어김없이 피었습니다. 공원에서 혹은 수목원에서 국화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가을햇볕에 가늘게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가을의 소유권을 가지고도 가을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을을 세공하고 있었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왜, 국화 앞에서가 아니고 국화 옆에서 라고 했을까? 라는 생각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대구수목원의 국화축제장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있는 국화코끼리, 국화기린, 국화곰돌이…. 살아있는 동물 보다 피어있는 동물을 보는 눈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화는 국화 '위'나 '아래'에서 피지 않고 오직 '옆'에서 피어나고 있었지요.
마더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해 CBS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스튜디오를 찾은 마더 테레사에게 앵커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테레사 수녀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대답했지요. "나는 듣습니다." 예상 밖의 대답을 들은 앵커는 당황해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이 듣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잠시 생각하다 다시 "그분도 듣지요" 라는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앞에 있는 눈, 코, 입에 비해 옆에 있는 귀가 좀 더 큰 이유는 왠지, 앞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옆에 있는 것 잘 들으라는 당부나 계시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만 보고 가다 놓친 것들 귀담아 들으라고요. 그런데 옆을 강조하거나 사족 같은 귀 없이도 국화는 잘 듣고 있었습니다. 잘 듣는 다는 것은 잘 보는 것이겠지요. 상대방 소매 끝에 달랑거리는 실밥을 떼어 준다거나 입가에 묻은 국물 보고 휴지를 슬쩍 건네는 일처럼요. 휴지를 건네 듯 국화는 여린 날개의 벌들에게 한 모금의 달콤한 가을을 선사하였습니다.
잠깐 동안 국화는 피어나지 않고 새어 나기도 했습니다. 국화의 속도로 힐끗힐끗 새어 가을을 누설하느라 바빴습니다. 꽃잎에서 꽃잎은 새어나고, 벌들도 새어나고, 가을도 새어났습니다. 국화의 몸은 더욱 부풀어 지고 벌들도 더 분주했습니다. 가을의 얼굴은 또 얼마나 빨개지는 지. 옆에서의 일들은 앞에서의 일보다 대체로 자잘한 대신 즐거움은 오래갑니다. 오래가는 것은 훨씬 더 큰 일입니다. 국화 옆에서도 국화는 온통 가을의 귀를 곤두세웁니다.
예컨대 옆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옆이 된다는 건 누군가의 옆이 되어 주고 싶은 것이겠지요. 옆은 나란한 것이며 닮아가는 것이며 손잡는 것입니다. 봄과 여름을 지나 함께 가을을 맞는 국화처럼. 임창아 시인·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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