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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복마전 대구염색공단, 방관하는 대구시

채원영 사회부 기자
채원영 사회부 기자

'복마전'(伏魔殿). 소설 수호지에 등장하는 '복마지전'에서 유래한 말로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이란 뜻이다.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근거지란 해석으로 언론 지상에 단골로 등장하는 수식어다.

대구염색산업단지관리공단(이하 염색공단)을 보고 있자면 복마전이란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1980년 조성돼 대구를 먹여 살렸던 섬유업의 핵심 기반으로 기능했던 과거는 퇴색된 지 오래다. 섬유업의 쇠퇴와 더불어 염색공단에는 구성원들의 갈등과 반목, 그로 인한 고소·고발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염색공단중앙로 담벼락에 걸린 빛바랜 현수막이 이를 증명한다. 현수막에는 얽히고설킨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시뻘건 글씨로 서로를 공격하는 문구를 적어놨다. 경기 침체와 섬유산업의 쇠퇴 속에 염색공단이 앞장서 120여 개 입주업체를 결집해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고 바닥을 치는 섬유 경기를 헤쳐나가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약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염색공단을 취재하며 염색산업단지 종사자들에게 종종 들은 말은 "살기 어렵다"였다. 업체를 꾸려 가기도 바쁜데 염색공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깊은 관심을 두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잡음에 완전히 귀를 닫지는 못하는 상황인 것. 업체 관계자들은 한숨을 푹 쉬며 "염색산단에서 계속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할지 고민된다"는 푸념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언론과 시민사회단체 등을 통해 제기된 '유연탄 채굴비 횡령' '공사비 부풀리기 의혹' '환경설비 부실 논란' 등을 접하고 있노라면 입주업체 입장에서는 소위 말하는 '현타'(현자 타임·현실 자각의 시간)가 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열심히 일해 내일을 도모하기도 모자란데 관리 주체의 각종 비리 소식을 듣고 있자면 힘이 쭉 빠지는 것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현재 염색공단 입주업체의 대표 중에는 부모로부터 공장을 물려받은 이들도 꽤 된다. 문제는 더 이상 이들의 자녀가 공장 물려받기를 꺼린다는 점이다. 수익도 예전 같지 않은 데다가 염색산단이 지역 발전, 특히 대구 서구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자면 쉽사리 이곳에서 미래를 그리긴 어려운 상황인 탓이다.

젊은 경영인이 유입되지 않으면 염색산단 유지가 힘들 것은 분명하다. 이 같은 상황에 대구시는 뒷짐만 지고 있다. 제기된 여러 의혹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바라만 보고 있다. 대구시 섬유패션과 관계자에 따르면 시는 염색공단에 보조금을 지급하지는 않지만, 양측이 맺은 양도·양수협약상 시는 염색공단의 이사장과 상임 임원 등의 승인권을 가지고 총회의 의결 사항과 산단 현황을 보고받는다.

아울러 시는 염색공단 지도·감독을 위한 감사와 개선 명령 등의 조치 권한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구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어지는 의혹과 고소·고발전에도 몇 차례 사실관계를 조사할 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염색공단의 문제가 견제 장치의 부재에서 비롯된 점을 감안하면, 대구시가 최소한의 견제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대로라면 대구 경제를 이끌어가는 대표 산단이었던 염색산단의 미래는 없다. 대구가 '섬유 도시'라는 이미지가 점점 옅어지는 만큼 염색산단의 미래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염색산단의 재부흥을 위해서는 어찌 됐든 염색공단이 중심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염색공단은 더는 복마전이란 단어가 들려오지 않도록 분골쇄신의 자세로 지난 잘못을 털어내고, 대구시는 제대로 된 견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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