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라면 고맙대이" 대구서 시작된 이웃돕기 프로젝트

행정복지센터에 은둔 1인 가구 위한 '함께라면 고맙대이' 라면 나눔함 설치
라면·즉석밥 나눔 활동…편지 사연 남기면 연락

5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2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한 주민이
5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2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한 주민이 '사랑의 라면 나눔함'에서 라면과 즉석밥을 꺼내가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5월 대구 남구 대명2동에 살던 A(49) 씨가 집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동사무소 복지과 님들 고마웠습니다. 도와주려고 했던 여러분 이렇게 실망만 시켜 드리고 이렇게 가서 미안합니다. 주인집 이모 정말 죄송하고 이렇게 폐를 끼쳐 미안합니다.' A씨가 남긴 유서엔 원망 한 마디 없이 미안함만이 가득했다.

지난해 이웃의 도움으로 행정복지센터에서 긴급생계지원을 받고 기초수급자로도 선정된 A씨였지만 1년을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대구 남구 대명2동 행정복지센터와 대명2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함께라면 고맙대이' 프로젝트를 통해 A씨처럼 지역 내 도움이 필요한 은둔·홀몸 가구를 찾는 것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함께라면 고맙대이 프로젝트'는 소외된 이웃에게 라면 2개와 즉섭밥 1개를 무료로 나눠주는 활동이다. 복지센터에 설치된 나눔함에 담긴 라면 꾸러미를 복지센터를 방문하는 주민 누구나 주위에 있는 어려운 이웃에게 전하면 된다. 여기서 '대이'는 대명2동의 줄임말이다.

꾸러미 안에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는다'는 '희망 편지지'도 동봉돼 있다. 어려움을 겪는 이웃이 있다면 편지지에 사연을 써서 남기면 된다. 복지 담당 공무원과 직접 대면하는 걸 꺼리는 주민들이 많은 점을 배려한 조치다.

강재국 대명2동 행정복지센터 복지팀장은 "라면과 즉석밥이 당장 큰 도움이 안될 수도 있겠지만 위기에 처한 은둔형 주민을 적극적으로 찾기 위해 시작했다. 은둔형 1인 가구는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거나 적극적인 요청을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해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기 쉽다"고 했다.

이달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마을 주민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5일 오후 1시쯤 대명2동 복지센터 안에는 라면 꾸러미를 가지러 온 주민들 1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특히 몸이 불편한 고령층의 반응이 뜨거웠다. 대명2동의 노인비율은 전체의 21.76%로 대구에서도 고령지수가 높은 편에 속한다.

위암 등으로 늘 몸이 불편하다는 한 60대 할아버지는 "가족도 없이 외롭게 사는데 대명2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수시로 나와서 도움을 주고 있다"며 "이런 것까지 준비하는 줄은 몰랐다"며 왈칵 눈물을 쏟기도 했다.

5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2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한 주민이
5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2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은 한 주민이 '사랑의 라면 나눔함'에서 라면과 즉석밥을 꺼내가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다른 80대 할머니도 "요즘은 행정복지센터에 놀러 오는 것이 낙"이라며 "자식들은 외지에 있고 생활이 어려워 연락조차 잘 안 되는데 복지센터가 살뜰히 챙겨줘서 정말 고맙다"고 웃어보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별도의 예산 지원 없이 대명2동 주민들이 십시일반 거둔 돈으로 마련됐다. 각종 대명2동 특화사업과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활동비 등을 모으고 13개 주민단체들이 힘을 보탰다.

강 팀장은 "라면뿐만 아니라 김치 등 다양한 품목으로 '고맙대이'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주민공동체를 강화해 대명2동에 더 이상 고립된 주민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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