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난 커서 '키즈 크레이터'가 될 거야." "응? 뭐라고?" 잠시 귀를 의심했다. 여섯 살 딸이 되고 싶다는 게 아직 본인이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키즈 크리에이터'를 말하는 건가? 한 달 전까지 딸아이의 첫 번째 꿈은 '집에서 책 보며 일하는 사람'이었다. 작가나 시인을 말하는 것 같진 않다. 일은 한다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갑자기 '크리에이터'란다. 연간 수십억원을 번다는 유튜버 '보람튜브'를 말하는 건 아닐 테다. 딸아이는 보람튜브를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때 머릿속에 누군가 떠올랐다. 요즘 그야말로 '힙'하다는 크리에이터, 남극에서 온 '펭수'다.
아이는 유튜브를 자주 본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대신 IPTV를 통해 유튜브를 본다. 한참 즐겨보던 '개구쟁이 뽀로로'나 '엉뚱발랄 콩순이'를 거쳐 '헤이지니'와 캐리TV '엘리가 간다'에 빠져 있다가 '허팝TV' '흔한 남매' '아리키친' 등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유튜브 채널로 넘어갔다.
펭수가 나오는 '자이언트 펭TV'는 사실 필자가 찾아준 채널이었다. 아이에게 유튜브를 틀어줄 땐 같이 보는 편이다. 어떤 내용의 유튜브 채널을 보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유튜브 채널들이라도 유아가 보기엔 위험한 실험이 많았고, 거친 표현이나 몰래카메라 등 따라하기 십상인 내용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EBS에 제대로 속았다. 착하고 교훈적인 메시지를 줄 것 같던 EBS에서 'B급 펭귄'이라니. 펭수가 랩을 쏟아내며 등장하는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았다. 열 살짜리 펭귄이라더니 군필자스러운 행동이라니. 이상한데, 정말 이상한데. 아이와 함께 보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이란. 아이보다 더 펭수를 좋아하게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딸아이의 꿈이 돼버린 '키즈 크리에이터'는 사실 펭수의 꿈이다. 남극 '펭'에 빼어날 '수', 남극 출신의 펭수의 나이는 열 살. 키는 210㎝다. 큰 키와 독특한 눈 모양 때문에 남극에서는 따돌림을 당했지만, 뽀로로와 BTS의 나라 한국에서 우주대스타로 성장하고 싶어 남극에서 왔다. 현재 EBS 연습생 신분으로 EBS 소품실에서 산다. 벌써 구독자가 41만3천 명을 넘어선 대세 중의 대세다.
어설프게 보였던 펭수가 스위스에서 배워왔다는 요들송을 기막히게 부르고, 흥겨운 비트박스를 쏟아내니 이런 반전이 없다. 열 살짜리 펭귄이 즐겨 먹는 차는 뜨거운 녹차이고, 비타민과 영양제를 빼먹지 않는다. 아파서 먹는 게 아니라 건강하려고 먹는단다. 좋아하는 소설은 '삼국지', 좋아하는 과자는 '빠다코코넛'이라니 남극의 시간은 한국과 다르게 가는가 싶다.
펭수의 매력은 자신만만하면서도 현실적이고 거침 없는 입담에 있다. 스트레스 받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 대신 '응원'을 건넨다.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꼰대들이나 하는 말이다.
"참치는 비싸, 비싸면 못 먹어, 못 먹을 땐 김명중"이라며 김명중 EBS 사장의 이름도 스스럼 없이 부른다. "갈팡질팡하는 게 고민"이라는 20대 시청자에게 "주변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 눈치 아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MBC에 가선 '최승호 사장님, 밥 한 끼 합시다'라고 제안한다. 그게 펭수 스타일이다.
착하면서도 거침없고, 시니컬하면서도 따뜻한 펭수,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당돌한 모습. 다시 딸을 돌아본다. 네가 되고 싶다는 크리에이터가 펭수처럼 '갇힌 틀을 깨는 창조자'라면 무조건 OK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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