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김혜남‧박종석, 포르체, 2019

모두 괜찮으세요?

'안녕, 나의 우울아.'

저자는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이렇게 열었다. 서문의 제목이 이렇게 해맑을 수가. 세계보건기구는 인류를 괴롭히는 무서운 질병 중 네 번째가 우울증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안부를 묻듯 가볍게 툭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의 독감이라는 우울증. 그것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조언한다(9쪽). 그 끝에는 밝은 빛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다. 그게 뭐든 동굴이 아니고 터널이라면 끝내는 지나갈 수 있는 거니까.

근래에는 심리상담과 심리치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권석만, '이상심리학총론', 2016). 이럴 때 전문가가 주는 깊이 있는 통찰은 마치 공부를 하기 전 책상 정리를 하는 듯한 개운함을 준다. 저자 김혜남은 국립정신병원에서 12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했고, 베스트셀러인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쓰기도 했다. 공저자인 박종석은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센터 전문의를 거쳐 현재 연세봄건강의학과 원장으로 있다.

이 책은 올해 9월에 나왔고, 10월에는 태풍 '미탁'이 우리나라를 지나갔다. 그때 서평의 필자는 안동의 숙소에서 쓸쓸히 이 책을 읽었는데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던 인간의 내면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당시 안동은 국제탈춤페스티벌 중이었다. 나는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문구가 쓰인 종이컵에 축제의 흥겨움과 요란함을 부어 마시고는 개인의 불안감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던 것이다.

장창수 작
장창수 작 '위로'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번아웃증후군, 만성피로증후군, 허언증, 강박증, 불안장애 등 거의 대부분의 증상들이 소개된다. 각 증세들마다 '입사 5년 차 직장인 진영 씨' 등의 구체적인 캐릭터를 내세우고 그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들어 설명한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도록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조증, 우울증의 자기 진단을 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체크리스트도 제시해 놓았다. 자기를 점검하는 데 요긴하다.

파트가 끝날 때마다 '일요일 오후 1시'라는 대화 코너를 선보인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저자가 겪었던 마음의 상처 이야기를 이토록 진솔하게 털어놓는 심리학 서적은 본 적이 없다. 저자 박종석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20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중학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대구에 사는 친구의 도움으로 함께 기거하며 삶의 의욕을 회복했다고 털어놓는다.

"친구의 가벼운 위로, 지나가는 사람의 작은 친절도 삶의 숨구멍을 틔워주는 소중한 물꼬가 될 수 있고, 그것이 희망이 되어 바닥에서 다시 올라올 수 있구나(47쪽)."

누군가의 작은 관심이 큰 희망이 된다는 것이다. 시나브로 터널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버렸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용기를 내 반대쪽 출구로 걸어가 보자. 필경 거기에 빛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가 맞아 줄 테니까.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옆방에서 근무하던 K 선생님이 벌컥 방문을 열었다. 우리는 웃으며 인사했고 차 한 잔을 나누었다. 그러고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타인의 작은 배려가 큰 힘이 되었다면 가끔은 다른 이에게 돌려주는 것도 좋으리라. 이타심은 남을 돕기도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을 돕는다. 이 가을, 모두들 괜찮은지 물어보는 책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어 보자. 덧붙여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도 좋겠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파인딩 포레스터'(2000)다.

장창수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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