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 가을·겨울철 '계절성 정동장애' 주의보

가을을 타는 남자 '계절성 우울증'…실제론 여성이 80% 차지 

김희철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 이제 가을이 완연하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 왠지 우수에 젖어드는 마음이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가을만 되면 많은 남성들이 한번쯤 우울한 기분과 함께 고독에 빠져들기도 한다.

반대로 봄은 여자의 계절이다. 만물이 소생하면서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이 활짝 펴지면서 여성들은 마음이 들뜨고 자꾸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사람의 기분상태는 이처럼 계절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가 있다. 계절에 따라 기분 상태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나는 경우를 의학적인 용어로는 '계절성 정동(情動)장애'라고 한다.

가을이 깊어가는 가운데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일시적인 우울감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지만, 매년 특정한 기간에 증상을 반복적으로 호소하는 경우 계절성 정동장애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 우울증과 달리 무기력 속 과다수면, 과식 특징

계절성 정동장애라 함은 우울증뿐만 아니라 기분이 들뜨는 조증 등 기분증상이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을 말한다. 흔히들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정확한 의학적 용어는 아니며, 우울증이 계절적 영향을 받아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에 한해서만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일반적인 우울증은 불면, 식욕저하, 체중감소 증상을 보이지만 계절성 우울증에서는 평소보다 잠을 많이 자는 과다수면이 나타나고 무기력이 심해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내려고 한다. 또한 탄수화물 섭취가 증가하고 과식을 해 체중이 늘어나는 것이 특징적이다.

계절성 정동장애란 몇 번의 계절에 걸쳐서 규칙적으로 기분의 변화가 되풀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문헌에 의하면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가장 흔한 형은 '겨울형' 계절성 정동장애다. 이는 가을철이 되면 우울해지기 시작해서 겨울이 지날 때까지 우울하다가 봄과 여름이 되면 우울이 없어진다.

반대로 드물지만 '여름형' 계절성 정동장애도 있다. 여름에 주로 우울해졌다가 가을과 겨울이 되면 오히려 우울이 없어지는 경우이다. 계절적으로 나타나는 우울증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우울 증상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우울한 시기에는 식욕이 오히려 증가하고 잠이 많아지며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이 생겨 체중도 늘어난다.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며 사람들이 만나기 싫어지는 것은 보통의 우울증세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개 의학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들이다.

병적이지는 않지만 정상인들에게도 계절에 따른 기분의 변화는 일어날 수 있다. 몇 년 전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대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참가자의 반 이상이 겨울철(12월-2월)에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전체 참가자의 5% 이상은 계절성 정동장애의 임상적 진단에 해당됐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계절성 정동장애는 전체 성인의 약 4~12%에서 나타난다고 보고됐다. 흔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계절성 정동장애 환자들의 약 70~80%는 여자이며, 가장 흔히 발병하는 연령층은 30대이다. 일반적으로 적도에서부터 멀어지는 지역, 즉 위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발병률이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 '햇볕이 藥' 세로토닌 생성 빛 치료 효과

기분 상태가 계절적인 변화를 보이는 것에 대해 정확한 기전은 모르지만 몇 가지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는 요인은 일조량이다. 추분을 기점으로 해서 다음해 춘분이 돌아오는 반년간은 밤이 낮보다 길어져 햇빛을 받는 시간이 줄어들고 이것이 생체 내에 변화를 주어 우울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겨울형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인위적으로 강한 빛을 쪼이면 약 80%는 상당한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치료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계절적인 변동을 보이지 않는 일반 우울증 환자들은 빛 치료에 효과적이지 않다.

겨울형 우울증이 빛 치료에 효과를 나타내는 것은 우울 증상의 원인이 멜라토닌 분비의 이상 또는 멜라토닌의 비정상적 반응 때문이라는 주장과 관련이 있다. 뇌의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은 인간의 성 행동, 수면, 기분 등을 조절하는데, 이 물질은 여러 가지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분비가 조절되며 그 중 햇빛도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햇빛은 인간에서 멜라토닌 생성을 억제함으로서 멜라토닌에 의한 과수면, 피곤함, 우울증 등을 호전시킨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는 논란이 있다. 빛 치료의 효과를 설명하는 또 다른 이론은 밝은 빛에 노출이 되면 세로토닌의 생성이 증가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행복의 물질'로 불리는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생긴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치료효과에 대한 정확한 기전은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지만, 아무튼 밝은 빛을 많이 쪼이면 겨울형 우울증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햇볕을 쪼이게 되면 체내에서 비타민 D의 생성이 촉진된다. 비타민 D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합성에 관여하기 때문에 우울증의 예방에 도움이 된다.

◆트립토판 풍부한 돼지고기, 바나나 등 섭취를

적절한 신체활동 역시 우울한 기분을 극복하는 데 유용하다. 하루 30분 가벼운 운동이나 낮 시간 동안 산책을 자주 하고, 당분이 많은 음식 섭취를 줄인다. 야간에 스마트폰의 빛에 노출될 경우 생체리듬 불균형이 악화되기 때문에 잠자리에서 되도록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 외에도 계절성 우울증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트립토판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로토닌은 트립토판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우리 몸에서 트립토판이 많이 부족하면 세로토닌의 결핍과 우울증으로까지 유발시킬 수 있다.

김희철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트립토판은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필수 아미노산이므로 반드시 음식으로 섭취해야 한다.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높다고 알려진 돼지고기에는 육류 중 트립토판 함량이 가장 높다. 100g당 250mg의 트립토판이 함유되어 있어 스트레스 해소와 불면증 해소에 좋다고 알려진 바나나보다 25배나 높은 수치다. 또한 비타민 F라 불리는 아라키돈산이 돼지고기 속에 풍부하게 들어있어 기분을 좋게 만들고, 여기에 신경안정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B1도 많이 들어있어 우울증 완화에 효과적이다.

이 밖에도 트립토판은 바나나, 치즈, 달걀흰자,생선, 육류, 씨앗류 등에서 풍부하다.

도움말 김희철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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