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받은만큼 줄 수 있어서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지난 1983년 11월 방한한 미국 레이건 대통령 내외가 귀국길에 한국 어린이 2명을 안고서 환히 웃고 있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미국으로 데려가 무료수술을 하기 위해서다. 영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간 한국 어린이들은 무사히 심장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당시 한국에서도 심장 수술을 하고 있었으나, 단순 심장 기형만 겨우 가능했고 성공률도 낮았다.

필자는 지난 6월 몽골에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밀알심장재단, 부산 백병원팀들과 함께 일주간의 일정이었다. 밀알심장재단은 의료 취약국의 심장병 어린이를 진료하고 현지에서 수술이 가능한 경우 수술 지원을, 현지 수술이 어려운 경우 한국으로 초청해 무료 심장 수술을 주선하는 민간봉사단체다.

필자가 부산백병원에 근무 당시 밀알심장재단과 인연을 맺은 이래 8년 전부터 의료 취약국 심장병 어린이들을 진료하고, 한국에서 심장수술을 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매년 몽골을 갈 때마다 이전에 심장수술을 받았던 아이들이 공항에 나와 우리를 반기고 건강하게 자란 모습을 보며, 또 이번에는 어떤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릴지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몽골은 1980년대 우리나라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의료 환경이 취약해 인근 중국, 러시아로 원정 수술을 하러 가기도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소수층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수술을 생각하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우리 의료진을 찾아온 120명 대부분은 심장 수술이 필요한 아이들이었다. 현지에서 심장병을 진단받고 수술할 길이 없어, 한국 의료봉사팀을 기다렸던 것이다. 이 아이들을 진료하고 심장초음파 검사를 하는 것이 필자의 역할이다.

당장 수술을 서둘러야 할 아이, 여러 차례 단계적 수술이 필요한 복잡심장기형의 아이들은 그나마 다행이다. 수술 시기를 놓쳐 폐동맥 고혈압이 생기는 아이젠멩거 합병증으로 수술이 불가능한 아이와 그 부모를 마주보고 있을 때에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막막하다.

파랗게 변해버린 입술과 손이며, 가쁜 숨을 쉬며 우리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을 모두 진료한 뒤에는 고통스런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함께 간 팀원들도 이 시간만큼은 말수가 적어진다. 수많은 아이들 중에 환자의 상태와 수술 시급성을 따져 명단을 작성한다. 수술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예산 문제로 몇 명 밖에는 초청하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남겨진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으로 모두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낸시 여사와 국제구호단체 '생명의 선물(Gift of Life International)' 도움으로 건강을 찾은한국 아이는 미국에 입양되어, 보험회사 직원으로 살았다. '내가 받은 도움을 세상에 돌려주겠다' 는 생각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해 결국 '생명의 선물' 직원이 되었다. 그가 도움의 손길을 준 첫 아이가 우간다 12세 소녀였다. 이 아이가 조국인 한국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한 첫 사례였다. 그는 안정적인 보험회사를 박차고 나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자식의 심장수술 후 자원봉사로 우리 의료진과 매년 함께 하는 몽골 어머니들도 같은 마음일것이다.

받은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렇게 갚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멋진 일인지. 이들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동원 대구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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