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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수험생 모두 수고했어요

최병고 디지털뉴스부장
최병고 디지털뉴스부장

92학번인 기자는 1991년 12월에 대학 입시를 치렀다. '학력고사' 시절이었다. 4지선다형 지식암기형 문제가 너무 많다는 비판에 밀려 학력고사 대신 수능이 처음 치러진 건 2년 후인 1993년.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이자, 수능 1세대인 응사 학번이 그렇게 탄생했다.

말하자면 기자는 학력고사 끝물 세대다. 당시는 '선지원 후시험' 방식이었다. 먼저 원하는 대학에 입학원서를 쓰고, 이후 시험 점수에 따라 당락이 갈렸다. 전국 100만 명 수험생을 일렬로 줄을 세웠다. 1년에 한 번, 오직 학력고사 성적만 반영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같은 복수 지원도 없었다. 지원한 대학에 떨어지면 '묻고 더블'(재수)로 가는 수밖에. 아니면 후기 대학이나 전문대를 가야 했다. 눈치 경쟁도 극심했다. 대입 원서 마감 날, TV에선 선거 개표 방송처럼 전국 각 대학 학과 경쟁률을 자막으로 밤늦도록 내보내곤 했다.

91년 그 겨울, 학력고사 시험장은 경북대의 어느 단과대학이었다. 이른 아침의 대학 교정은 낯설고 안개로 자욱했다. 키 큰 가로수 길을 주눅 든 채로 한참 걸었다. 그날 시험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교문을 나서며 후련했던 느낌만이 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소를 몰라 도청교 근방을 헤매다 캄캄해서야 집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 부모님은 시험을 어떻게 쳤는지에 대해선 묻지도 않으셨다.

오늘은 2020학년도 수능일이다. '합격 기원' '수능 대박' 응원으로 시험장 교문 앞마다 떠들썩할 테다. 이제 겨우 중학생 아이를 둔 기자도 마음이 콩닥콩닥한다.

올해 수능 응시생은 54만8천여 명으로 전년보다 4만6천여 명이 줄었다. 재수생을 뺀 재학생은 39만4천여 명으로 수능 사상 처음으로 40만 명 아래로 내려갔다. 졸업생 응시생은 14만2천여 명으로 전년보다 6천700여 명이 늘었다. 지난해 불수능으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졸업생들이 재도전에 많이 나선 것 같다고 한다. 그렇든 말든 고3도, N수생도 오롯이 자신에만 집중하길 바랄 뿐이다.

오늘 저녁 아이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쉬지 못할 것이다. 수능 가채점을 하고 자신의 예상 등급을 맞춰 봐야 하기 때문이다. 논술과 면접 응시 여부를 따지면서 수시 일정을 맞추고 대입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입시 업체들은 '진짜 입시는 이제부터'라며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학원 앞에 아이를 내려줄 때마다, 무거워 축 처진 가방을 멘 또래 아이들을 본다. 제 몸의 몇 배나 되는 짐을 이고 줄지어 가는 개미 군단 같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이 엄마 찬스, 아빠 찬스로 불신받고, 그래서 입시 정책이 또 요동쳐도 아이들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수능일 아침 배웅하는 학부모와 수험생의 마음이 어떨지, 기자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인생의 큰 통과의례 앞에 선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힘내라고, 그리고 수고했다고 등을 토닥여 주고 싶다.

'자존감이 높은 부모는 점수보다는 아이의 수고를 먼저 인정해 주고,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는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원하는 성적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존감이 낮은 부모일수록 자녀들이 매사에 완벽해지기를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존감이 높은 부모는 완벽을 요구하거나 강요하기보다는 결과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최선을 다하라고 말한다.'(윤일현 '밥상과 책상 사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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