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대통령이 앞장서 사슴을 말이라고 하니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참으로 못 볼 꼬라지이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이동식 발사대(TEL)로 쏠 수 있는가를 두고 문재인 정권 안보라인이 보여준 '봉숭아 학당' 수준의 입씨름 말이다. 문 정권이 연출하는 못 볼 꼬라지가 한둘이랴만 이는 특히 심했다.

1일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은 그런 능력이 없다고 했다. 곧바로 서훈 국정원장은 그 반대로 말했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뱅뱅 돌았다. 북한이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분간이 안되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입이라도 맞추지 이게 무슨 민망한 '시추에이션'인가.

더 못 볼 꼬라지는 청와대의 '종합'이다. 정 실장의 말과 서 원장의 말은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대척(對蹠)이다. 둘 중 한 사람은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다. 변증법 용어를 빌리면 정 실장의 말은 정(正), 서 원장의 말은 반(反), 아니면 반대로 서 원장의 말은 정, 정 실장의 말은 반이다. 청와대는 이를 '해석상의 차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청와대, 국방부, 국정원은 같은 분석을 하고 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는 합(合)을 만들어냈다.

뱉어낸다고 다 말이 아니다. 북한이 ICBM을 TEL로 발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해석'이 아니라 '팩트'의 문제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거다. '해석상의 차이'라는 '해석의 요술'을 아무리 부린들 있는 게 없는 게 되고 없는 게 있는 게 되지 않는다.

그 '같은 입장'이란 것도 같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북한은 TEL로 ICBM을 쏠 수 없다'로, 정 실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한솥밥을 먹는 청와대 식구라서 그랬나? 서 원장만 딱하게 됐다.

그 논리 전개는 이렇다. 'ICBM을 운반하고 세우고 발사까지 해야 이동식 발사인데 북한은 2017년 ICBM인 화성-14, 15형을 TEL로 운반만 하고 바로 세워 쏘지 않았으니 TEL 발사가 아니다. 증명 끝.' '형식논리'의 극치다. TEL로 옮겨 내려서 쏘든 TEL에서 바로 쏘든 모두 이동식 발사다. 미사일을 신속하게 이동해 언제 어디서든 기습발사할 능력을 지녔느냐가 본질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합'이 나오자 국방부 국방정보본부장이란 인사가 희대의 코미디-이를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면-를 연출했다. 그는 8월 합동참모본부 국정감사에서 "북한 ICBM은 현재 TEL로 발사 가능한 수준까지 고도화된 상태"라고 했으나 6일 정보본부 국감에서는 반대로 말했다. 북한의 '능력'이 몇 달 만에 연기처럼 사라진 건가, 아니면 8월에는 심각한 오판을 한 건가. 그것도 아니면 '똥별'의 생존 본능 발동인가.

이런 못 볼 꼬라지의 연원은 알고 보니 문재인 대통령이다. 지난해 9월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약속대로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이 폐기되면 북한은 미사일 도발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문재인판 지록위마(指鹿爲馬)이다. 동창리 실험장은 말 그대로 실험장이지 발사대가 아니다. 북한이 ICBM을 동창리 실험장에서 쏜 적은 없다. 그러나 정 실장, 청와대, 국방정보본부장은 문의 '어록'을 그대로 따랐다. 진실과 양심과 상식에 대한 모독이다. 미 군사 전문가들은 정 실장의 발언을 "입이 떡 벌어지는 거짓말" "완벽한 헛소리"라고 한다.

문 대통령의 지록위마는 전방위적이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대북 정책, 검찰 개혁 등이 모두 그렇다. 아닌 것을 맞다고 하고 맞는 것을 아니라고 한다. 이에 그 수하(手下)들은 '지당하십니다'라고 '떼창'을 한다. 그 풍경이 참으로 그로테스크하다. 망해가던 진(秦)의 꼬라지가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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