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비효율적이고 비효과적이다." "사회간접자본(SOC)을 지방에 자꾸 만들어도 인구 감소에 따라 나중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중앙 부처 한 인사의 말이다. 이 발언은 중앙 부처에서 외면받고 있는 국가 균형발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거수일투족 주목받는 고위급 관료나 지역 정치인의 입에서 나왔다면 파장이 일 만한 발언이기도 했다. 수도권의 지하철, 도로, 교통과 공항 등 SOC 인프라 역시 온전히 수도권 스스로 생산해 낸 게 거의 없는데도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의 철저한 수도권 중심적 발언은 씁쓸함을 남긴다.
"위에서 쪼지 않으면 중앙 부처는 균형발전에 절대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역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균형발전 정책은 청와대와 집권당의 강력한 드라이브와 범정부적 공감대 없이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된 균형발전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 "여전히 지방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사회적 양극화와 함께 지역 간 불균형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가 균형발전의 엔진을 다시 힘차게 돌려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2월 '지역이 강한 나라, 균형 잡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균형발전 비전을 선포하며 언급한 내용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고 역대 어느 정부보다 그 성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오히려 수도권 집중을 가속화하는 정책들이 잇따라 결정됐다. 공공기관 추가 이전을 전제로 한 혁신도시 시즌2는 1년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고,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기 용인행, 3기 신도시 조성, 광역급행철도(GTX) 건설 등 균형발전에 대한 투자가 병행되지 않은 수도권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6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양정철 원장이 "획기적인 균형발전 정책이 필요하다는 중론이 있다"며 "당·정·청 협의로 (균형발전을 위한) 책임 있는 비전이 나올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아직 비전의 행방은 묘연하다.
지금은 정부가 균형발전 정책을 포기했거나 아예 방향을 전환한 것 아니냐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에 관여했던 한 학자는 '참여정부는 균형발전 의지와 순수한 열의가 강했다'고 소회했다. 혁신도시,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제 도입 등을 추진하고 성과를 내며 청와대가 학계와 끊임없이 소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는 이러한 소통조차 없다며 단호한 평가를 내놨다. 균형발전에 대한 진정성은 찾을 수 없고, 기대만 높여 놓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거리가 먼 정책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내년에 인구와 지역내총생산(GRDP) 모두 수도권이 비수도권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은 상징성이 클 수밖에 없다.
수도권이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기형적인 수도권 중심의 일극 체제가 머지않은 것일까? 우리나라 인구가 감소해도 수도권 인구는 계속 늘어나니 '경제 논리'에 따른 그의 말처럼 정말 정부 투자, SOC는 중앙으로만 집중해도 되는 것일까?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영화는 결말을 향할수록 누가 기생하는 가족인지 알 수 없게 그려진다. 공생과 상생은 없고 결국엔 모두가 파국을 맞는다. 수도권 과밀화와 일관성 없는 균형발전 정책 역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를 재촉해 국가의 장기적인 잠재력을 잠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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