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같이&따로] 자율과 여유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Q. 다음에 설명하는 나라는 어디일까요? 2019년 UN 발표 행복지수 세계 1위(참고로 한국은 조사대상 156개국 중 54위). 2018년 1인당 국민소득 6만1천227달러(세계 9위), 인구 약 575만 명, 면적 약 4만3천㎢ (남한 면적의 약 40%), EU 가입 국가이지만 자국 화폐 사용. 천연자원은 부족하지만 서비스업과 제조업 발달, 2016년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부패지수 1위(혹 부패지수 1위라 해서 부패한 나라가 아니라 부패 정도가 가장 낮은 국가를 의미함)인 국가는? 잘 모르시겠다면 세계적인 맥주 칼스버그의 산지라는 힌트! A. 답은 덴마크이다.

한 달 전,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해외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출장국은 바로 덴마크였다. 학기 중이라 부담은 컸지만, 유럽 국가 중에서 관광으로 다녀오기는 쉽지 않은 나라라 많은 것을 배우고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장을 떠났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대표적 복지국가인 덴마크는 매력적인 나라로 생각되었다. 종종 우리 사회의 복지나 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방송에서도 덴마크라는 나라는 우리와 많이 비교되곤 한다. 필자도 수업시간에 사회복지와 사회 전반의 의식수준을 보여주기 위해 덴마크의 사례를 인용하곤 했다. 필자는 요즘 보건복지부에서 강조하는 '탈시설화'를 살펴보기 위해 주로 노인복지시설을 중심으로 방문하였다.

10월 중순의 북유럽을 가기 때문에 가을임에도 상당히 추울 듯 생각되었지만, 생각보다는 기후도 따뜻했고 덴마크 사람들도 친절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필자가 받은 덴마크의 느낌을 SNS 식으로 표현하면 '#자율 #여유'였다. 복지국가라는 생각 때문에 복지현장 곳곳에 규율과 지침이 상당히 촘촘히 작동할 것이라는 필자의 생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개인들은 최대한 자율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국가와 사회는 개인들의 자율적인 삶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사회시스템을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유와 배려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경우, 노인복지시설에 노인들의 보행을 돕기 위한 핸드레일이 복도를 비롯해 생활공간뿐만 아니라 노인과 관련된 시설의 모든 공간에 설치되어 있지 않으면 시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심지어 핸드레일의 규격까지 제시되어 3년 주기로 시행되는 사회복지시설 평가에서 규격에 미달되면 평가에서 점수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필자가 방문한 덴마크의 노인시설은 아주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는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히 필자를 포함해 동행한 사회복지사들은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덴마크 시설관계인의 대답은 이동이 불편한 노인이라면 보행보조기구를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실용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가급적이면 노인들이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노인들에게도 좋으니까.

더 흥미로운 것은 요양원의 화재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었다. 작년에 덴마크의 요양시설에서 거주 노인이 피우던 담배로 대형화재가 발생하여 80명 넘게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었다. 우리는 당연히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지침과 규정을 만들고, 이를 행정기관이 감독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또 그렇게 대응해왔다. 그런데 덴마크 정부의 대응은 다시 한 번 연수팀을 당황시켰다. 담배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최소한의 피해가 발생하도록 시트나 이불을 방염 소재로 바꾸고, 담배를 피울 때 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기구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사고와는 너무 다른 접근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만들고, 규제를 지키도록 하기 위한 각종 감독과 평가, 그리고 규제를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제재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사회복지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시스템이었다. 시설관계인도, 공무원도, 시설 노인들도 모두 미소가 항상 떠나질 않았다. 그들의 삶 속에는 '여유'가 있었다. 자율은 혼란이 아니라 또 다른 질서인 여유를 만들어주었다. 필요한 도움을 주되 최대한 복지서비스 대상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나라. 국토도 작고 자원은 많지 않지만 국민이 부유하고 행복한 나라 덴마크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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