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가을 미국에 사는 장녀가 아비의 건강을 염려해 영문 성서를 사경해보라는 권유가 있었던 차에, 우연히 접한 문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중병을 앓아 한쪽 폐를 절제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교황의 무병장수와 건강을 빌며 성경을 베끼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93세의 가톨릭 신자인 장순식 씨는 2013년 9월부터 깨알보다 작은 극소세필의 영문필기서체로 성경을 올 4월에 200쪽 분량 대학노트로 4권(A4용지로 400장 분량)에 달하는 성경 사경(寫經)을 마쳤다. 사경은 한 눈에 보기에도 줄이 반듯하고 글씨형태는 일정하기 그지없어 예사롭지 않다. 웬만한 정성이 아니라면 쉽게 이룰 수 없는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처음에 획과 글이 고르지 않아 남이 보기에도 좋지 않았죠. 첫 일 년 간 사경한 내용은 모두 폐기했고 2년째부터 줄과 글씨가 제대로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극소세필로 쓰기 위해 볼펜심도 0.38mm를 사용했습니다."
장 씨에 따르면 극소세필은 몸 전체를 이용해 써야 한다. 하지만 사경하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고 심신이 편안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경에만 심취할 수 있었다. 좋은 내용은 귀에도 쏙 들어오면서 머릿속에 입력도 잘 됐다. 행과 선, 글자체가 고르게 되면서 재미도 있었다.
이윽고 올해 4월 사경을 끝내자 보는 사람마다 "잘 썼다"는 칭찬을 아끼자 않자 용기를 내어 바티칸에 4권의 사경 성경을 보냈다.
"설마 했었는데 올 8월 바티칸의 교황성하께서 잘 받았다는 답장과 함께 선물로 감사장과 은제 묵주를 보내주셨는데, 13억 가톨릭 신자들의 수장으로부터 이를 받게 되자 너무 영광스러웠습니다."
장 씨는 대구 봉덕성당 박수태 주임신부를 비롯해 모든 신자들과 함께 이 영광을 나눴다.
그는 무엇보다 사경하는 동안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되살아남에 스스로도 놀랐다고 했다. 되살아난 기억력을 통해 흘러간 옛 노래도 흥얼거릴 수 있었고, 고관절 협착증으로 거동이 불편했던 다리로 채 5분 걷기 힘들었던 것이 이제는 1시간 정도 걸을 수도 있게 됐다.
"제가 사경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노인들도 아무 하는 일없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뭔가 움직여야 뇌 활동도 활발해질 뿐 아니라 몸도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극소세필을 쓰면 등에서 땀이 날 정도가 된다.
이 때문에 장 씨는 요즘도 몸이 조금 안 좋다싶으면 볼펜을 든다. 1차 영문필기서체 성경사경에 이어 올 6월부터 2차 사경작업을 시작했다. 글씨체도 1차 때보다 절반 크기로 잡아 필사자의 고뇌와 집념을 보여주고 싶어서란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는 동안엔 쓰러지지 않는다'며 사람도 마찬가지로 나이 들수록 무언가를 붙들고 열심히 하면, 없던 건강도 생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장 씨는 젊어서부터 발명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현재 국내외를 통틀어 50여건의 특허를 갖고 있으며 제네바 발명전시회에서 특상과 금상을 받기도 했다. 젊은 한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달에는 부력을 이용한 발전기를 특허 출연하기도 했다.
"현재 65세 노령인구의 의료비가 연간 30조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고 있으면 정신건강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죠."
장 씨는 자신의 사경 경험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해 심신이 건강한 노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을 꼭 전해달라고 기자에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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